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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GDP와 ‘행복’ / 조계완

등록 2015-10-25 18:49

요즈음 한국과 중국을 비롯해 세계 주요 경제의 올 3분기 국내총생산(GDP) 지표가 연일 속보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미국·유럽연합의 경제성장률 동향에 전세계 경제정책 담당자, 기업인, 투자자는 물론 일반 가계까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단 석달간(7~9월)의 성장률 동향이 이처럼 이목을 집중시키는 숫자로 등장한 적이 몇번이나 있었던가? 짧은 분기 성장률에 대한 집착은 어쩌면 더 큰 경제적 충격이 올 수 있다는 두려움, 활력 잃은 경제가 깊은 ‘성장 둔화’에서 좀체 탈출하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의 반증일지 모른다. “이제 위기를 회피하고 마침내 대안정을 구가할 비결을 터득했다”고 외쳐온 미국 경제학회 연례총회장의 환호를 사람들은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지디피는 20세기에 가장 흥행한 경제지표였다. 누군가는 “경제 성장은 한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다른 주제를 떠올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디피 통계는 발전과 진보를 측정하는 기준이자 문명이 준 선물이기도 했다. 1999년 미국 상무부 장관 윌리엄 데일리는 지디피 통계 편제를 “20세기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은행의 <알기 쉬운 경제지표 해설> 책자도 지디피 통계가 경제정책에 이용된 이래 큰 폭의 경기순환은 사라졌다고 설명한다. 사이먼 쿠즈네츠가 받은 1971년 노벨 경제학상은 1930년대 상무부의 의뢰로 그가 개발한 국민소득계정 실증 통계에 대한 공로로 수여됐다.

돌이켜보면 숨가쁜 성장에 익숙해지는 동안 놀랍게도 경제정책의 다른 목표에 대한 관심은 사라졌다. 사실 경제분석가들이 지디피에 기를 쓰고 매달려 왔지만 동시에 이 지표는 우리를 늘 곤경에 빠뜨리는 개념이었다. 바로 ‘행복’에 대한 얘기다. 성장 신화에 도전하는 경고음은 국민소득 통계에 노벨상이 주어진 70년대부터 이미 대두했다. 1974년 경제학자 이스털린은 ‘경제성장이 인간의 운명을 개선시키는가’라는 유명한 질문을 던졌다. 유럽연합이 1973년부터 조사해온 ‘세계 행복도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지난 수십년간 풍요의 문턱을 넘어섰음에도 ‘실질소득’ 그래프는 오른쪽 위를 향해 줄기차게 직선으로 상승하는데도 그 아래 ‘행복도’ 그래프는 73년 수준 그대로 끈질기게 수평선을 유지하고 있다. “지디피 수치로는 행복을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는 탄식이 간헐적으로 출몰했으나, 근래엔 이런 물음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지디피의 오만에 대한 준열한 반성이 다시 40여년 만에 노벨상으로 표현된 것일까?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에 대해 스웨덴 왕립아카데미는 “소득·소비·빈곤 연구 기여”라고 발표했지만 나는 지디피에 대한 그의 이의 제기에 주목한다. 디턴은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북동부를 할퀴고 간 직후에 쓴 글에서 “허리케인은 더 자주 닥칠 것이다. 이때 들어가는 복구비용과 별 효과 없을 예방비용은 지디피 수치를 끌어올리겠지만 실제 우리의 복지후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조계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
조계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
그럼 지디피와 행복 간의 경제학적 화해는 어떻게 가능할까? 정교한 통계 의상을 걸친 채 우리를 열광케 하고 현혹해온 지디피에 디턴처럼 의문을 제기하면서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발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두 논객이 한국에 온다. 오는 28일 제6회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기조연설자로 서는 로버트 스키델스키와 자야티 고시는 “포도주 한병, 빵 반덩이, 그리고 인적 없는 장소에 앉아 있는 그대와 나, 우리에게는 술탄의 왕국보다 더 많은 부가 있다”는 고대 시인의 노래를 들려주며 건강·존중·우정·여가 등 “삶의 좋은 것들”을 설파한다. 지디피 못지않게 ‘행복’ 역시 우리 내면 깊숙이 꿈틀거리며 불을 지르는, 진지한 정치적 단어가 아닌가.

조계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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