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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방위비분담금 이자놀이 / 박병수

등록 2015-11-01 18:50

미국 국방부가 9월10일 1년3개월 만에 한국 정부에 보내온 한-미 방위비분담금 이자수익에 대한 공식 서면답변 내용을 보고 후안무치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국이 군사건설 비용으로 쓰라고 준 돈으로 이자놀이를 했고, 그 이자를 미 국방부 소유 은행인 커뮤니티뱅크의 운영비로 썼다고 태연히 밝히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자수익이 얼마인지는 모른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속된 말로 ‘배째라’는 것 아닌가.

미국이 방위비분담금을 쓰지 않고 커뮤니티뱅크에 적립해 놓은 돈은 2015년 10월 현재 3900억원으로 줄었지만, 2000년대 후반 1조원을 넘던 시기도 있었다. 당시 3~4% 수준의 예금금리만 적용해도 한 해 이자수익이 300억~400억원이 넘는다. 시민단체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은 2009년 법원에 제출된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서울지점과 커뮤니티뱅크의 금융거래 자료를 토대로 2006~2007년에만 방위비분담금 이자수익이 566억원에 이른다며 “적립금이 처음 발생한 2002년부터 적용하면 총 이자수익 규모는 3천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그럼에도 미국이 “이자수익이 커뮤니티뱅크의 전체 투자가능잔고에서 발생해 방위비분담금 계좌의 이자수익만 산정하기 불가능하다”며 그냥 ‘꿀꺽’하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아무리 재정적자로 살림이 어려워졌다지만, 그래도 세계를 호령하는 최강국이 아닌가. ‘푼돈’에 연연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그동안 미국의 오락가락 행태를 보면 이런 태도가 새삼스럽진 않다. 미국은 애초 방위비분담금의 미집행액이 “커뮤니티뱅크의 무이자 계좌에 예치돼 있어 이자수익이 없다”고 했다가, 지난해 1월 이자 발생 사실을 시인했다. 또 커뮤니티뱅크의 법적 지위도 “사실상 민간은행”이라고 했다가, 이번에 다시 “미 국방부 소유 은행”이라고 말을 바꿨다. 미 정부 기관이 되면 한-미 조세협약에 따라 이자소득에 과세할 수 없으니, 세금도 한 푼 낼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우리 정부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그동안 미국의 입장만 앵무새처럼 전달했다. 정부는 2013년 10월 국회 보고에서 “미측으로부터 이자수익이 없음을 공식적으로 네 번(2007년 6월13일, 2008년 10월24일, 2008년 11월3일, 2013년 5월31일) 확인했다”고 남 일 대하듯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4월 야당이 이 문제를 한-미간 타결된 방위비분담금(2014년부터 5년간 매년 9200억원+알파)의 국회 동의와 연계할 뜻을 내비치자, 그제야 “커뮤니티뱅크가 민간은행으로 판정되면 이자소득에 세금을 물리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6월이 되어서야 미국에 커뮤니티뱅크의 법적 지위 등을 묻는 질의서를 보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최근 국회 국방위에서 “방위비분담금은 법적으로 일단 지불하면 미국 계좌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자금으로 보는 게 제한된다는 게 공식 입장”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줬으니 미국 돈이고 그래서 뭐라 말하기 어렵다는 얘기로 들린다. 그러나 이 돈은 미국 마음대로 쓰라고 준 돈이 아니다. 사용 목적이 군사건설로 정해진 돈이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정한 것도 아니고 두 나라가 합의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꼬리표가 달린 돈을 다른 곳에 써서 부당한 이득을 얻었다면, 그건 신의성실 위반이고 더 나아가 배임 아닌가.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정부는 2019년부터 적용되는 차기 방위비분담금 협상 때 이자수익 문제를 반영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동안 등 떠밀려 마지못해 나서는 듯한 태도를 보면 얼마나 책임감 있는 얘기인지 의문이 앞선다. 더구나 3~4년 뒤 일이면 다음 정부 때고 지금 담당자들은 다른 자리에 가 있을 터이니 말이다.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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