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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실망’만 안겨주는 청년‘희망’펀드 / 이상호

등록 2015-11-01 18:55

지난 9월15일 노동개혁안에 대한 노사정 합의가 공식화되고 난 뒤 박근혜 대통령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하면서 청년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기금 조성을 지시했다. 대통령의 뜬금없는 발상이 ‘청년희망펀드’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관제펀드의 본질을 드러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통령이 일시금 2000만원과 함께 매달 월급 20%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하자 가신들의 ‘뷰티 쇼’가 벌어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 국무위원과 여당 주요 정치인들의 동참 선언이 바로 그것이다.

늘 그러하듯이 청와대의 깜짝 이벤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기금 출연금 실적이 별로 좋지 않다는 언론의 보도가 나오자 재벌 총수들의 ‘억’ 소리 나는 기부 행렬이 이어졌다. 그 뒤를 이어 산하 대기업 임직원들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펀드 가입에 동원되고 있다. 한 금융기관의 경우 청원경찰과 시간제 비정규직까지 펀드 가입을 강요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희망’펀드가 누군가에게 ‘고문’펀드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펀드 조성을 통한 사업 내용도 새로울 게 없다. 관제펀드의 색깔을 지우려고 청년희망재단 이사장을 민간인으로 뽑았지만, 얼마 전 발표한 사업계획을 보면 수년째 진행되고 있는 고용노동부 사업의 재탕, 삼탕에 다름 아니다. 맞춤형 훈련 알선 및 일자리 연계 사업은 기존의 청년취업 아카데미와 유사하고,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기반 인재뱅크 구축 및 채용 연계 사업은 기존의 청년인재은행과 동일하다. 청년 해외진출 프로젝트 사업은 ‘케이무브’(K-move)사업의 판박이다. 이런 식이라면 사업중복에 의한 예산 낭비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처럼 ‘희망’펀드는 국민들에게 ‘실망’만 안겨줄 공산이 크다. 기부와 같은 자선행위를 통해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상부터가 이해하기 힘들다. 그의 말처럼 “청년일자리 지원 사업을 조속히 추진하고 심각한 청년일자리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 과연 기부금 모금인가?

청년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 요구하는 것은 바로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적극적인 투자이다. 청년고용을 창출하는 적극적인 투자는 세계적인 목소리이기도 하다. 이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최근 내놓은 ‘2015년 청년고용의 세계적 추세’라는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보고서 결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투자는 이들로 하여금 활력을 되찾게 만들고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이끌어낸다. 또한 이러한 투자는 사회의 후생 증진은 물론이고,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능하게 만든다.”

여기서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 주체는 민간만으로 한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 공공부문의 투자자이면서 노동 사용자이기도 한 정부가 선도적이고 모범적인 구실을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논리적 근거는 “정부의 공공지출과 청년고용률이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국제노동기구의 보고서 내용에 들어 있다. 사회복지 체계가 부실한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공공서비스 분야의 일자리 창출은 고용과 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묘수이기도 하다.

이상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이상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정부는 더 이상 청년들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 기부로 청년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청년들에게 ‘희망’펀드가 또 하나의 희망‘고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 늦기 전에 정부는 좋은 일자리를 청년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투자촉진형 산업정책을 국민에게 내놓아야 한다. 왜냐하면 산업정책을 통한 투자 확대가 좋은 일자리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이상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lshberlin06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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