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던 2009년 8월10일, 대구에는 하늘에서 ‘어마어마한 선물 보따리’가 떨어졌다. 충북 오송과 함께 대구가 첨단의료복합단지로 지정됐다. 대구 시민들은 “이제 지방에서도 먹고살 길이 열렸다”며 기뻐했다. 그해 봄철부터 부산, 대전, 인천, 광주 등 전국 대도시 10여곳이 사활을 건 싸움을 벌였다. 그만큼 첨단의료복합단지는 매력 넘치는 미래 먹거리 산업이다.
지금부터 20~30여년 전만 해도 대구는 우리나라 중남부의 중심도시였다. 역대 대통령 3명을 대구에서 배출했다는 자랑이 대단했다. 당시 경북고등학교는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명문학교로 손꼽혔다. 경북고 출신은 우리나라 정계, 관계를 한손에 거머쥐고 흔들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대구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도시를 지탱해왔던 섬유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빚은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많다. 2003년 봄에 192명이 숨진 대구지하철 참사로 시민들은 의기소침해져 사기를 잃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해마다 1만여명이 수도권을 향해 떠난다. 대구가 절망의 도시로 변해 간다는 탄식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쏟아진다.
이런 가운데 결정된 첨단복합단지는 가뭄에 단비나 다름없었다. 대구시는 동구 신서동 혁신도시 옆 터 100만여㎡에 우리나라 최고의 첨단연구시설을 유치한 뒤 2038년까지 세계시장에 내다 팔 신약과 의료기기를 개발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짜고 있다. 제대로 된 신약을 하나라도 개발해낸다면 그 가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이다. 부풀리기 좋아하고 생색내기를 즐기는 관료들은 첨단의료단지의 생산증가 효과 82조원, 고용창출 효과 38만명이라고 성급히 발표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해도 총사업비 4조6천억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지방에 들어서는 국가산업단지 건설 비용이 수천억원대인 점을 고려한다면 그야말로 초대형 프로젝트인 셈이다.
하지만 첨단의료복합단지에는 벌써부터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져 있다. 입지로 선정된 지 6년, 업무를 추진할 공기업인 의료산업진흥재단이 출범한 지 5년이 흘렀지만 건물은 텅텅 비어 있을 만큼 추진이 더디다. 의료단지 주변에 편의시설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은 이용하기 어렵고, 승용차를 타고 가도 도로표지판이 없어 골탕을 먹기 일쑤다.
첨단의료복합단지에 근무하는 공기업 간부 직원들은 걸핏하면 자리를 비운다. 대구 시민들이 “경쟁관계에 있는 오송은 100m 달리기에서 벌써 30~40m나 앞서 달리고 있는데 대구는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다”고 꼬집어도 이들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다. 의료복합단지 인근의 ‘의료 아르앤디 특구’에는 의료단지에서 연구해놓은 신약이나 의료기기를 대량생산하겠다며 입주한 기업들이 있다. 이미 가동중인 기업 21곳을 살펴봤더니, 사업장 1곳당 고용인원은 평균 25명, 연매출액은 45억원으로 집계됐다. 세계시장을 겨냥한다는 최첨단 의료복합단지의 배후생산기지가 너무 초라하다. ‘세금 4조원을 들여 시골마을 농공단지를 지으려고 하느냐’는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첨단의료복합단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걸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지역에 널리 퍼져 있다. 매달 회의를 열어 대구시를 조목조목 추궁하는 대구시의원들도 첨단의료단지 앞에서는 말없이 고개를 숙인다. 지역 국회의원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말을 못한다고 한다.
나태와 무능이 겹친 전형적인 공기업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여기에다 비판의 목소리마저 봉쇄당해 감시·감독마저 없다면 첨단의료복합단지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구대선 영남팀 기자 sunnyk@hani.co.kr
구대선 영남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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