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제제를 위하여 / 남은주

등록 2015-11-08 18:48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주인공을 모티브로 한 아이유의 신곡 ‘제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처음엔 “원작 훼손”이라는 비판으로 시작해 “소아성애라는 성범죄를 미화했다”고까지 커지는 모양새다.

이 소설을 출판한 도서출판 동녘이 5일 페이스북에서 “소설 속 제제는 가족에게서도 학대를 받고 상처로 가득한 5살짜리 아이”라며 제제를 교활하다고 표현한 아이유 노래 가사와 제제를 핀업걸처럼 그린 앨범 일러스트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면서 시작된 논란이다. 6일 아이유는 페이스북에 “가사 속 제제는 소설에서 모티브만을 차용한 제3의 인물”이라며 사과문을 올렸지만, 같은 날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는 “아이유의 ‘제제’ 음원 폐기를 요청합니다”라는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에스엔에스(SNS)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평론가들과 아이유를 비판하는 누리꾼들의 논쟁이 이어졌다. 모두 하고 싶은 말이 많기 때문에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두드려 맞는 브라질의 가난한 아이를 보며 눈물을 쏟았던 독자들과, “제제의 모순성이 섹시하다”는 아이유의 생각은 서로 다른 은하계만큼 멀다. 보통 그 거리를 해석의 차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아이유의 비유가 터무니없고 조악하다는 비평 대신 “제제를 모욕했다”는 분노와 윤리적 비판이 있었다. 사람들은 아이유가 동심을 대변하는 캐릭터를 성적대상화했다며 분노했다. 이 대목이 가장 의아하다. 패러디나 재창작의 전략은 주로 원작이 가진 이미지를 뒤집는 것이다. 동화 속 고결한 백설공주가 있다면 잔혹하고 외설적으로 백설공주를 그린 수많은 책과 영화들도 있었다. 앞으론 17살 미만 캐릭터는 패러디의 대상으로 삼지 않아야 하며, 캐릭터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을 거스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

또 앨범 재킷에서 망사 스타킹을 신은 제제 그림과 젖병과 우유가 동원된 뮤직비디오 등이 롤리타 콤플렉스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반감이 더욱 커졌다.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면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게 따지고 보면 미성년자에 대한 성애를 자극하는 것이고 결국 소아성애를 부추기는 것”이라는 구조로 전개되다가 “그래서 아이유는 소아성애자”라는 결론을 내린다. 미소녀를 애호하는 취향을 말하는 롤리타 콤플렉스를 소아성애라는 병적인 집착과 동일시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에스엔에스에 올라오는 일부 글들을 보면 이 논란을 계기로 아이유뿐 아니라 걸그룹에 대한 혐오와 비판도 생겨나고 있다. 걸그룹이라고 하는 여자 아이돌들은 대부분 20살 이전에 데뷔해 이십대 중반만 되어도 인기가 떨어진다. 그런데 어린 여자애들에게 성적인 코드를 입히는 대중문화가 따지고 보면 소아성애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의 칼끝이 하필 그것을 향유하는 아저씨들이 아니라 ‘롤리타들’에게 향한 이유는 무엇일까? ‘롤리타들’을 공범자로 본 것이다. 아이유는 이전 앨범에서도 항상 롤리타 콤플렉스 코드를 활용해왔지만 롤리타 콤플렉스의 ‘대상’이었을 때는 아무런 논란이 없었다. 아이유가 자신에게 꽂히는 롤리타 콤플렉스 시선들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모습을 드러내자 가해자로 지탄받는 모순된 상황이 참으로 ‘섹시’하다.

남은주 대중문화팀 기자
남은주 대중문화팀 기자
머릿속 불온한 상상을 드러내는 작품을 현실의 범죄와 다를 것 없다고 단죄해도 되는 걸까? 표현의 자유에서 중시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자유롭게 발언하라’는 것 아닌가. 아이유의 ‘제제’는 그리 새로운 통찰을 주지도 않고 불온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상업적으로 의도된 논란이라는 혐의까지 받고 있지만 그 또한 표현의 자유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남은주 대중문화팀 기자 mifoc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