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는 190㎝가 넘는 키에 살이 많이 쪄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한테 “스모 선수 같다”는 농담을 들을 정도였다. 그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1995년 중국 방문 때는 공장을 시찰하던 중 타고 있던 엘리베이터가 멈춰선 일도 있다. 1998년 <슈테른>은 “체중 160㎏인 콜 총리의 구두끈이 공식석상에서 풀어질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 다시 매려고 할 경우 생체역학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콜은 건강 논란을 부른 자신의 체중을 한 번도 밝히지 않았다. 한번은 기자들이 묻자 “국가 기밀”이라고 대답해 화제가 됐다.
국가 기밀을 지정하여 관리하고 보호하는 목적은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그 내용이 누설되는 경우 국가의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것이라면 기밀로 보호할 가치가 있다. 이런 원칙 아래 국가는 그 범위를 정해 관리한다. 우리나라에선 군사기밀보호법 등 여러 법이 기밀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헌법 해석상 국가 기밀의 관리와 보호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
국가 기밀은 지나치게 보호하면 국민의 알 권리를 희생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국가 안전 보장이라는 애초 목표를 달성하는 데 되레 해가 될 수도 있다. 국가 안전 보장과 국민의 알 권리가 조화를 이뤄야 국가 존립이라는 헌법 가치가 제대로 실현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국가 기밀의 범위가 자꾸 넓어져 가고 있다. 세월호 사고가 있던 날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에 이어, 한국사 국정교과서 집필진 명단이 사실상의 국가 기밀에 새로 포함됐다.
어지간한 것은 다 기밀로 다루던 옛 소련에선 이런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어떤 사람이 ‘브레즈네프가 최근 몸도 쇠약해졌지만, 머리도 이상해졌다’고 말했다가 체포돼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5년은 국가원수 모독죄에 따른 형이고, 10년은 국가 기밀 누설죄에 따른 형이었다.” 기밀이 많은 나라에선, 말도 조심해야 한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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