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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물대포보다 무서운 것 / 박점규

등록 2015-11-16 18:29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미처 피할 틈도 없이 날아온 물대포가 얼굴을 강타했다. 눈을 뜬 채로 최루액이 동공을 때렸다. 비틀거리다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사람들이 생수를 구해 와 눈을 씻겼지만 고통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현대차 비정규직 해고자는 동료에게 실려 나갔다. 14일 서울 광화문 일대는 아비규환이었다. 얼굴을 정조준해 발사된 물대포는 공포 그 자체였다. 건장한 체격의 젊은이들도 푹푹 쓰러졌다. 물대포에 맞아 각막과 고막이 찢어진 시민들이 속출했다. 바람에 흩날린 최루액에도 눈물 콧물을 쏟아야 했다. 얼굴을 집중 포격 당한 농민이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다.

기아차, 현대제철 비정규직, 삼성전자서비스, 전교조…. 광화문에 깃발이 휘날렸다. ‘살상무기급’ 물대포를 맨몸으로 견딘 사람들. 정부가 청년실업의 주범으로 몰아세운 대기업노조와 밑바닥 인생 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밧줄을 당겼다. 농민과 공무원, 청년과 고등학생이 같이 물대포를 맞았고 나란히 경찰에 끌려갔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이후 7년 만에 최대 인파. 황금 같은 휴일을 반납하고 제 돈 내고 광화문으로 쏟아져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국민행복시대’를 내걸고 당선된 박근혜 정권 치하에서 더 이상 “못 살겠다”는 것이었다.

생수병 36만개(18만2100리터)를 노동자 시민들의 얼굴에 퍼부은 정부가 16일 파견법, 기간제법 등 5대 노동법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했다. 제조업의 다른 말인 뿌리산업(금형, 주조, 용접 등)을 비롯해 파견을 전면적으로 허용하고,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내용이 핵심이다. 한국노총의 팔을 비틀어 만든 ‘노사정 대타협’을 목놓아 찬양하던 정부가 비정규직 법안 타협 실패에는 ‘꿀 먹은 벙어리’다. 비정규직 당사자 실태조사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노동법을 강행처리하겠다고 한다.

‘박근혜 노동법’의 내일을 보여주는 도시가 있다. 30만명이 일하는 반월국가산업단지. 안산역과 정왕역 주변엔 직업소개소가 편의점보다 많다. 노동자 한 명 소개하면 파견업체가 35%를 먹는다. 일할 사람 찾아다니는 ‘삐끼’가 있을 정도다. 현행법상 파견 절대금지인 제조업 생산공정 상시업무이기 때문에 99% 불법이다.

정부안대로 뿌리산업에 파견이 허용되면 범죄가 경영으로 둔갑한다. 공장만이 아니다. 전문직도 ‘박근혜 노동법’ 파견 대상이다. 한국표준직업분류에 따르면 관리직과 전문직 업무가 무려 800개나 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연구위원은 55살 이상과 관리·전문직에게 파견을 전면 허용하면, 노동자 10명 중 4명이 파견노동 대상이 된다고 분석했다. 삼성, 현대차 등 재벌 대기업을 괴롭혀온 불법파견은 합법이 된다. 책상 하나 놓고 ‘사람장사’로 떼돈을 버는 파견업이 안산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된다. 비정규직 사용기간 4년 연장으로 숙련된 계약직을 마음껏 쓰게 되니, 신규채용을 할 이유가 없어진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된다. 물대포보다 100배 무서운 ‘박근혜 노동법’이다.

정부가 불법시위를 엄벌하겠단다. 법 좋아하는 정부에 묻는다.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판정한 차벽은 합법인가? 최루원액 물대포를 얼굴에 직사한 것은 준법인가? 대기업에 수두룩한 사내하청, 비정규직 ‘쪼개기 계약’은 불법인가, 아닌가? 사내유보금 710조원을 금고에 쌓아놓고, 재벌 3~4세를 위해 골목상권까지 잡아먹는 ‘갑질’은 합법인가? 재벌 일가와 대기업 노조 중 누가 개혁의 대상인가?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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