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결국 전염병으로 멸망할 것이다. 핵전쟁의 유행이 지나간 뒤로 묵시록 서사는 그렇게 예견한다. 특히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는 감염 인간과 정상 인간의 충돌 외에도 생존자들 사이의 사투로 갈등을 세분화해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영화 <월드워Z>,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 드라마 <워킹 데드>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야기 안에서는 크게 세 개의 축을 이루는 집단이 등장한다. 첫째, 질병에 감염된 사람들. 단지 격리 대상이던 환자들은 질병이 확산되면서 그저 사냥감이 된다. 둘째, 감염자를 제거하려는 보수적인 공동체 안정주의자들. 공동체의 안위라는 도그마 아래 수행되는 이들의 즉결심판을 제지할 수 있는 윤리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이 사냥꾼들은 얼마 못 가 감염이 의심되는 무고한 시민마저 사냥하기 시작한다. 학살을 묵인하던 시민들은 곧 전염병만큼이나 무차별적인 사냥이 공동체의 존속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삼각 구도에 충실한 좀비 전염물이 유달리 서구권에서 유행하는 이유는 공산주의 좌파와 전체주의 파시스트의 충돌로 발생한 민간인 학살에 닿아 있는 무의식적 집단 기억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나의 유령이 지금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로 시작하는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는 스스로 공산주의를 역사적 전염병처럼 묘사한다. 독일 노동당(나치)을 사찰하던 군 정보요원 히틀러는 오히려 이곳 당원으로 가입한다. 그리고 집권 뒤 공산주의자 박멸을 선언하는데, 정작 학살된 사람들은 600만명의 유대인, 그리고 수십만명의 장애인과 성소수자들이었다. 학살 대상자는 역시 수사적으로 ‘콜레라’ 등의 전염병에 비유되었다. 그래서 위대한 미국은 자유 진영의 수호자로서 나치 독일과 전쟁을 치렀다. 국내에서는 백인 순혈주의를 주장하는 케이케이케이(KKK)단이 ‘오염된 흑인들’을 사냥하는 동안에 말이다. 종전 후 미국에서는 상원의원인 조지프 매카시에게 공산주의자로 지목된 민간인 수백명이 수감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수감자 중에 공산주의자는 없었다. 서양 전체주의자들이 행한 단죄의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마침내 중세의 마녀사냥에 도달하게 된다.
한국은 어떨까? 일본 군관으로 중국 공산당을 토벌하던 박정희는 해방 뒤에는 남조선노동당의 군사총책을 맡았고, 쿠데타로 집권한 뒤에는 다시 입장을 바꿔 공산주의자들을 숙청했다. 그때까지 한국에 공산주의자들이 남아 있기나 했었다면 말이다! 다 지나간 일에 불과할까? 서울 시내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릴 때마다 참가자들은 ‘좌익 좀비’로 명명되며 폭력성 전염병 감염자처럼 묘사된다. 이 감염자들이 난동을 부리는 상상 속의 풍경은 좀비물에서 보던 그대로이기 때문에 신속한 진압은 쉽게 정당화된다. 가만히 서 있다가 살수 대포에 사냥당하는 무고한 희생양들이 존재하지만 그 사실은 공동체의 안정을 위해 의식적으로 망각된다. 그 역시 좀비물의 최신 트렌드 그대로다. 어쩌면 좀비 서사의 근간에는 파시즘에 대한 공포 이상의 이미지 조작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월드워Z>를 보라. 좀비 전염병은 북한에 맞서는 한반도의 미군기지에서 발생해서 팔레스타인 대장벽이 위치한 이스라엘이 인류 최후의 보루로 남을 때까지 퍼져나간다. 하지만 결국 정상 인류는 좀비를 박멸하고 그 승리를 미국의 ‘펩시 콜라’에 헌정한다.
하나의 유령이 이 땅을 배회하고 있다. 그렇다. 이것은 전염병이다. 감염자보다는 사냥꾼들에게 희소식이다. 나는 굶주린 사냥꾼들이 벌이는 막을 수 없는 축제를 본다.
손아람 작가
손아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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