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아프리카 등에서 계속되는 테러를 종교 간 해묵은 갈등의 연장선에서 해석하는 전문가 견해는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른바 성전에 참여하고 있는 10대와 20대 젊은이들의 상당수는 프랑스와 벨기에 등 유럽에 거주하는 이민자의 자녀들이다. 빈민지역에 거주하며 저임금의 비정규직으로 안정되지 못한 삶을 영위해온 젊은이들이 많다. 그들의 실업률은 국가 평균의 2~3배에 달하며, 심지어 50%까지 육박하고 있다.
재난은 일련의 과정이 누적되면서 압력이 임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가공할 폭발력을 가진다. 10여년 전부터 프랑스 파리 변두리 저소득층 거주지에서 실업과 이민족 차별에 항의하는 크고 작은 소요사태가 있었지만 정부는 안일하게 대응했다. 프랑스의 경우 사회복지제도가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기는 하지만 신자유주에 따른 경제 불평등 심화로 이민자 가족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가중되어 왔다.
인간은 생존이 위협을 받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질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종교를 통해 성찰하며 내면의 평화를 얻기도 하지만, 열정적이고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들은 종교의 근본주의에 빠지기 쉽다. 얼마 전 한 테러현장에서 자폭 직전의 10대의 동영상이 언론에 공개돼 충격을 주었다. 결연한 정의감의 이면에 어른거리는 죽음의 공포와 이별의 슬픔이 뒤섞인 아이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무엇이 극한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한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갔을까?
최근 이슬람국가(IS·아이에스) 세력에는 중동의 무슬림 국가뿐 아니라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중국 등 각국의 젊은이들이 속속 합류하고 있다. 중국 신장의 위구르족 출신 대원은 모두 300명에 이른다는 보도도 있었다. 신자유주의가 그 중심지인 미국을 넘어 유럽과 아시아 등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면서 세상을 향한 젊은이들의 염증도 그만큼 깊어가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바야흐로 평범한 청년들이 테러리스트로 돌변할 수 있는 현실을 우리는 살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어느새 경제 불평등의 문제를 넘어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눈앞의 시한폭탄이 되고 있는 것이다.
파리 테러 희생자 중에는 아이에스라는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들도 있다. 아이에스를 증오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식당과 콘서트홀에서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것이다. 이 전쟁을 프란치스코 교황은 무기상과 테러 음모꾼이 개입된, 3차 세계대전의 단편적인 모습이라고 경고했다. 증오에 탐욕이 더해진 신자유주의 전쟁은 무차별 살상이라는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9·11 테러 직후 형성된 테러와 반테러의 구도가 오래 지속되고 있는 배경에 군산복합체가 웅크리고 있다. 동서냉전 구도가 저물며 침체된 무기 시장은 ‘테러 신흥시장’의 출현을 반기고 있다. 파리 참사 직후 소집된 유엔 안보리가 테러 척결을 선언했지만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큰 것은 이 매력적인 시장을 무기상들이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핏줄처럼 얽혀 있는 그들의 네트워크에서 나오는 무소불위의 힘을 넘어설 세력은 현재로선 지구상에서 전무해 보인다.
종교, 경제적 불평등과 자본 탐욕 등이 복잡하게 얽힌 새로운 형태의 전쟁은 미래 지구촌이 직면할 심각한 위협이다. (테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신과 정부의 도움을 구하지 말자.’ 달라이라마의 말이다. 지구촌 시민 각자 스스로 절실한 문제로 인식할 때다.
하훈 시인, 국제평화운동가
하훈 시인, 국제평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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