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박근혜는 유엔까지 가서 새마을운동과 같은 유신 시절의 경제·이데올로기적 관제운동을 칭송한다. 하지만 ‘박근혜 시대’의 극우들이 키우고자 하는 인간상이나, 추진하고자 하는 이념은 유신 시절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들이 돋보이기도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 지배층은 ‘민족’ 대신 ‘자본’을 위주로 사고하면서 오로지 자기만의 생존과 성공을 위해서만 자나 깨나 분투하고 자신의 시간까지도 어릴 때부터 투자가치 있는 일에만 쓸 줄 아는 경제동물형 인간을 새로운 모범인격으로 내세운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변한다. 한국에서의 좌·우파 이데올로기의 함의를 포함해서 말이다. 예컨대 1980년대 좌파 민족주의자들은 ‘통일’을 요구했는가 하면 계급주의자들의 주된 요구는 ‘재벌 해체’였다. 요즘 같으면 그런 요구들을 역사책 이외에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 ‘통일’의 자리를 ‘통일지향적 대북정책’이 차지했으며, 재벌에 대해서는 고작해야 ‘노동자 경영 참여’를 요구하는 좌파 지식인들을 가끔 볼 수 있다. 부유해진 대한민국에서 그만큼 좌파가 순치되어 온건해졌다. 좌파만큼이나 극우파도 바뀌었다. 단, 극우파는 ‘온건해졌다’기보다는 개개인을 국가와 자본에 예속시키는 방식을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서 바꾼 것이다.
유신 시대는 주변부형 유사 파시즘 시대였다. 파시즘은 내면화돼 있는 적극적 동원논리인 만큼 유신시대가 요구했던 모범적 인간상도 ‘멸사봉공’이었다. 조국 근대화의 전사는 한쪽으로 ‘멸공’을 목적으로 해서 싸우며, 또 한쪽으로는 또 다른 수많은 순량한 국민들과 총화단결해서 ‘건설’에 매진해야 했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는 산업화 전사를 바쁘게 움직이게끔 해야 하는 에너지는, 꼭 “잘살아 보는” 세상에 대한 기대뿐만 아니라, 일본 군국주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계승한 강력한 종족적 민족주의이기도 했다:
“백두산의 푸른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 한라산의 높은 기상 이 겨레 지켜왔네/ 무궁화꽃 피고 져도 유구한 우리 역사/ 굳세게도 살아왔네 슬기로운 우리 겨레”(<나의 조국>)
이런 민족주의는 통합, 차등화, 그리고 배제의 논리를 동시에 포함했다. ‘빨갱이’는 ‘우리 겨레’에서 사실상 제외돼 홀로 고문실에서 죽어나가거나 연좌제의 적용 대상이 돼 평생 감시와 차별 속에서 반쪽 ‘비국민’ 삶을 살아야 했으며, 여성은 ‘국민’이긴 했지만 분명히 2등 국민에 불과했다. 한데 군에서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 무찌르자 북괴군, 이룩하자 유신과업!!!” 같은 구호를 외쳐대면서 정신무장을 튼튼히 한, 그리고 어느 정도의 학력을 보유한 대한의 건전한 남아라면, 일단 한번 입사한 회사에서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계속 근로하는 게 ‘보통’이기도 했다. 민족주의나 군사주의와 함께 ‘회사 가족’ 이데올로기도 박정희 정권이 제국주의 시절 일본으로부터 그대로 계승한 셈이었다.
효심이 지극해서인지 아니면 보수층 결집을 위한 수사 전략의 일환인지, 박근혜는 유엔까지 가서 새마을운동과 같은 유신 시절의 경제·이데올로기적 관제운동을 칭송하기도 한다. 한데 박근혜 정권의 정책이나 기업인들의 발화, 보수 언론들의 논조 등을 종합해보면, ‘박근혜 시대’의 극우들이 키우고자 하는 인간상이나, 추진하고자 하는 이념은 유신 시절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들이 돋보이기도 한다. 우선 차이는 무엇인가?
첫째, 유신 시대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의 비공식적 국시는 사회진화론적 ‘경쟁’의 논리다. 한데, 그때는 ‘경쟁’의 단위가 국가나 기업이었다면 ‘박근혜 시대’ 경쟁의 단위는 원자화되고 고립된 개인이다. 국가야 그때나 지금이나 개인에 대해 책임져주지 않는 건 마찬가지인데, 기업에는 인제 ‘회사 가족’이 아닌 쓰고 버릴 일회용 ‘인력’만이 필요한 시대에 개개인이 서로 경쟁하는 ‘작은 1인기업’처럼 살아야 한다. 유신 시대 한국인이 대한뉴스에서 나오는 국가 수출 실적에 다같이 환호성을 질러야 했던 집합적 주체였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아이는 학원에 가면 다음과 같은 권고 문구를 볼 수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으니/ 넌 우정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질 거야/ 그럴 때마다/ 네가 계획한 공부는/ 하루하루 뒤로 밀리겠지/ 근데 어쩌지?/ 수능 날짜는 뒤로 밀리지 않아”
‘친구’마저도 다 경쟁자로 인식해야 하는 사회에서는 ‘국민’은 2차적이며, 경쟁적 벌이의 주체로서의 개인은 1차적이다. 1970년대에 외화 반출이 범죄였지만, 오늘날 같으면 투자이민이라도 해서 ‘선진국’에서 노후를 보내는 게 극락왕생이나 천당행처럼 여겨진다. 정부는 (사실 노무현 시절부터 계속해서) 해외 주거용 부동산 구매 목적으로 300만달러까지 반출하는 것을 허용해주는 동시에 해외 취업 알선을 청년실업 대책이라고 홍보하고,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젊은이들도 이민 이외에 어떤 해결책도 발견하지 못한다. 정부와 ‘헬조선’에 절망한 젊은이들의 지향이야 각각 달라도, 이민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해결법을 권장하는 등 개인 경쟁의 이데올로기를 당연시하는 차원에서는 양쪽이 묘하게 공명한다. 결국 ‘조국 근대화’로부터 출발한 한국의 극우이데올로기는 각자도생·적자생존 이념으로 변형돼가면서 젊은층 사이에서 기반의 획득을 도모한다.
둘째, 민족주의는 상당부분 용도폐기됐다. 대한민국이 신자유주의 모범국이 되는 상황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외국 투자자가 국가를 상대로 제소를 할 수 있는 시대의 현실을 ‘백두산의 정기’를 가지고 제대로 합리화할 수 있겠는가? 민족주의 용도 폐기의 또 하나의 원인은, 현 지배층의 기원이 ‘민족’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대중들에게 정당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박정희 자신을 포함해서, 대한민국 관료기구 상부의 인적 구성은 대체로 총독부와 일군을 계승했다. 예컨대 초기 한국군 상황을 보면 1945년 이전 군사 경력자 중에서 한국군 장군까지 승진한 사람은 270명이 일군과 만주군 출신이었고 불과 32명이 광복군 출신이었다. 관료 기구뿐인가? 1938년에 세운 오늘날 삼성의 전신인 삼성상회는, 과연 태평양전쟁 때 일군의 군납업체 아니었던가? 박정희 시절에 정권이 원호처(현 국가보훈처)를 통해 빈곤층이 된 과거의 독립운동자 일부에게 지원을 하고, 좌파가 아닌 일부 민족주의 성향의 독립운동 지도자들에게 훈장을 추서하는 등 표면상의 민족주의적 “색채”를 적절히 과시하면서 한국 지배층의 식민지적 기원에 대한 비판 여론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었던 것은 언론과 출판이 통제되는 상황에서 ‘친일파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로이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한국 ‘주류’의 살아 있는 아이콘인 백선엽 장군이 항일운동가들을 ‘토벌’했던 간도특설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고 토론할 수 있는 오늘날에 와서는, 대한민국 지배층으로서 역사를 보는 기본 시좌 자체를 본질적으로 바꿀 필요가 생겼다. 박근혜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바로 이 작업을 의미한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바탕으로 쓰여 조선인이 일군에 입대해 장교가 되고 일군과 거래해서 이윤을 추구했던 것이 “우리나라 발전을 위한 애국”이라는 식으로 서술되면 ‘친일파’는 바로 ‘애국자’가 돼 대한민국 지배층의 기원이 완벽하게 정당화될 것이다.
위에서 보여준 것처럼, 박근혜로 대표되는 오늘날 대한민국 지배층은 과거의 ‘민족’ 대신에 ‘자본’을 위주로 사고하면서 오로지 자기만의 생존과 성공을 위해서만 자나 깨나 분투하고 자신의 시간까지도 어릴 때부터 다 ‘돈’으로 환산하여 투자가치 있는 일에만 쓸 줄 아는 경제동물형 인간을 새로운 모범인격으로 내세운다. 유신 시절과의 차이도 돋보이지만, 이 “신형 한국인”에게 국가권력에의 복종이 최고의 덕목이 돼야 한다는 점부터 계승성도 확연히 느껴진다. ‘민족’은 폐기되지만, ‘대한민국의 번영’을 지킨다는 군에서의 복무를 “진짜 사나이”가 되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통과의례로 여기는 군사주의적 사고는 여전하고, ‘빨갱이’들에 대한 유신 시절의 파시스트적 배제도 인제 점점 부활한다. 대한민국 지배자들이 경제 본위의 개인 생존 논리와 군사주의, 그리고 순종주의의 복합체가 저들의 부와 권력의 영원한 뒷받침이 되리라고 믿는 모양이다. 한데 이제 머지않아 곧 닥쳐올 경제위기의 폭풍이 다수에게 생존의 마지막 희망을 빼앗아 십만명이 아닌 백만명이 광장으로 나가게 되면, 저들의 오산이 얼마나 컸는지 저들이 알게 될 것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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