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앙언론사가 올해 7월부터 12월까지 매달 한 건씩 국방부의 홍보성 기사를 써주고 그 대가로 1억원을 받기로 계약했고 이에 따라 일부 기사를 작성해 보도했다는 지난 12일 진성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기자회견 내용을 전해 듣곤 참담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사실 정부 부처와 언론사가 홍보대행업체를 중간에 끼고 돈과 기사를 은밀히 거래한 것이 그렇게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한겨레>는 이미 8월, 고용노동부 등이 여러 언론사와 정책 홍보기사 보도 계약을 맺고 지난해에만 61억여원을 집행했다는 등의 고발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그래도 국방부 출입기자로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며 부대껴온 사람들이 그런 음습한 냄새가 나는 일을 거리낌없이 했다는 걸 아는 건 전혀 다른 느낌이다.
우리나라 언론에 공공기관이나 기업체의 협찬을 받아 보도하는 관례가 없는 건 아니다. 그래도 대체로 해당 기사가 어디의 협찬을 받았다거나 어디와 공동기획을 했다는 것 정도는 명기해 독자들이 알도록 해왔다. 그러나 이들 기사에는 그런 것도 없다. 고용노동부의 한 홍보대행사는 지난해 12월 결과 보고서에서 이런 식의 홍보기사가 같은 비용의 광고보다 19배의 홍보성과를 달성했다고 자랑스럽게 분석했다. 당연한 얘기 아닐까. 독자들이 광고주의 일방적 홍보라고 여길 광고와 기자가 객관적으로 썼을 것으로 믿는 기사 중 어느 쪽을 더 신뢰하겠는가. 그러나 사실상 광고인 것을 기사로 포장했으니, 사기와 뭐가 다를까.
공정거래위원회는 그동안 업체들이 블로거들에게 돈을 주고 홍보성 글을 올리도록 한 사례를 여러 차례 적발해 과징금을 물렸다. 최근 한 커피전문점은 이런 공정위의 징계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낸 적이 있다. 홍보대행사가 했기 때문에 자사 책임이 아니고 블로거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진실한 내용을 썼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서울고법 행정7부는 지난 13일 돈 받은 것을 안 밝히면 “블로그, 카페 등에 실린 상품이용 후기가 진실한 경험에 근거해 자발적으로 쓴 것으로 소비자들이 신뢰한다”며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해선 안 될 기만적 광고행위라는 것인데, 정부야 뭘 더 말하겠는가.
최근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활성화로 언론사간 경쟁이 전례없이 치열해지면서, 언론의 입지는 돈 앞에 더욱 취약해졌다. 그래서 이런 ‘발주 기사’가 벌써 몇 해 전부터 곳곳에서 암암리에 성행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래도 국방부나 고용노동부는 정부 부처가 아닌가.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언론을 상대로 매수나 다름없는 일을 한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도를 넘은 것이다.
국방부 기자실은 지난주 해당 언론사 출입기자를 징계했다. 수위는 ‘주의’로 낮은 수준이지만, 전례없이 두 차례나 기자총회를 열어 격론을 벌인 끝에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사실 출입기자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누군들 회사가 ‘홍보성 기사를 쓰라’고 하면 안 쓰고 배길 수 있겠는가. 다른 데서도 많이 한다는데 하는 주저도 있었다. 그래도 “넌 얼마짜리 기사를 쓰냐”는 비아냥을 듣고 싶진 않다는 자괴감 같은 것이 다수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 이젠 정부가 올바른 답을 내놓을 차례라는 시위의 뜻도 담겨 있는 것 같다.
1990년대 이후 언론자유는 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빚지고 있다. 유신 땐 중정 요원들이 언론사에 상주하다시피 했고, 전두환 정권 땐 ‘보도지침’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그러나 이젠 돈이 그 역할을 대신하려는 시대가 된 모양이다. 며칠 전 엄혹한 시기 민주화를 이끌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가셨다. 정말로 한 시대가 간 걸까. 마음이 무겁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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