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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농민 백남기를 말한다 / 안관옥

등록 2015-12-01 19:23수정 2015-12-02 14:33

백남기씨 보성집. 사진 안관옥 기자
백남기씨 보성집. 사진 안관옥 기자

그는 복면을 하지도, 두건을 쓰지도 않았다. ‘임마누엘’이라는 천주교 영세명을 가졌으니 아이에스(IS)일 리도 없다. 그런 그가 11월14일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벌써 보름 넘게 의식이 없다.

칠순을 바라보는 농민 백남기씨. 그는 서울까지 올라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궁금했다. 전남 보성에 있는 빈집을 찾아갔다. 그의 집은 대문도 담장도 없었다. 마당과 뒤란은 단정했다. ‘예초기의 달인’이라 불리는 그의 부지런함 덕분이라고 이웃들은 전했다. 처마 밑에 ‘민주화운동 관련자’라고 새긴 작은 동판이 보였다. 대학 시절인 1970년대를 치열하게 산 흔적이었다. 그의 방 안에는 지금은 장성한 3남매가 백일사진 속에서 천연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날 그는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가을걷이를 마친 보성 농민들은 버스 3대에 나눠 타고 ‘아스팔트 농사’를 지으러 서울로 갔다. 버스 안의 공기는 무거웠다. 3년 연속 풍년으로 끝없이 떨어지는 쌀값을 어떻게 해야 할지 착잡하기만 했다. 막바지에 이른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으로 입을 피해에 대한 걱정도 깊었다.

30년 경력의 농부인 그는 80년대 중반 소를 키웠다. 귀농 초기 금리 15~20%의 축산자금을 빌려다 소를 입식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공급과잉으로 소값이 ‘똥값’이 되면서 1억여원의 빚을 졌다. 아직도 그는 이 빚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농지를 담보로 잡히고 이율이 낮은 자금으로 갈아탔을 뿐이다. 그는 아들(32)에게 농사일을 물려주기로 하고, 함께 쌀·밀·콩 농사를 짓는다. 농촌의 현실과 농업의 미래에 대해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농민들과 거리를 행진하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약을 지키라고 했다. 대통령은 80㎏ 쌀값을 21만원대로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2013년 17만원 하던 쌀값은 15만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실제로 수확기 쌀값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양곡도매시장에서 20㎏ 쌀값(11월26일 기준)은 2012년 4만4000원에서 2013년 4만3000원, 지난해 4만1000원으로 낮아졌다. 올해는 3만6000원으로 내려앉았고, 심지어 2만9500원에 거래되는 등 투매 조짐마저 보인다.

수심이 깊어진 농민들은 200만t에 이르는 재고미 중 일부를 북한에 지원하자고 제안했다. 쌀값을 안정시키고, 작물을 대신 받는 등의 대북 쌀 지원 효과를 알렸다. 정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쌀값이 요동치는 상황인데도 미국과 중국에서 밥쌀을 들여와 불안을 부추겼다.

정부는 쌀값이 떨어져도 농가의 피해는 없다는 태도다. 목표가격(80㎏)인 18만8000원 아래로 떨어져도 차액을 직불금으로 보전하기 때문에 소득이 줄지 않는다고 한다. 개방농정 과정에서 농업피해 대책으로 200조원 가까이 투입했다며 딴전을 부리고 있다.

그와 농민들은 농가 소득이 연간 3000만원에 불과하다고 손사래를 친다. 직불금이 만능은 아니어서 쌀값이 떨어지면 당연히 소득은 낮아진다는 것이다. 피해대책비는 눈속임일 뿐 농업예산이 대폭 늘어나지 않았고, 그나마 농촌 개발과 대농 육성에 맞춰져 소농의 소득을 올리지 못했다. 시장을 열면서 번번이 희생을 요구했지만 사전에 대책을 두고 동의를 구한 적이 없었다. 농민이 1000만명에서 300만명으로 줄어 당하는 홀대가 서운하기만 하다.

안관옥 호남제주팀 기자
안관옥 호남제주팀 기자
그날 그는 이런 말을 하러 서울로 갔다. 하지만 ‘농민을 위한 나라’는 없었다. 물대포가 돌아왔다. 정부는 아무 소리도 듣지 않으려는 듯 5일 집회마저 틀어막고 있다.

안관옥 호남제주팀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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