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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새로운 ‘관행’을 위해 / 남은주

등록 2015-12-06 18:44

드라마 <송곳>이 종영되고 닷새 뒤인 지난 4일, 이 드라마의 배경음악을 맡은 로이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와 이곳에서 일했던 작곡가들의 교섭도 끝났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결렬됐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만든 2076곡의 저작권과 음원수익을 돌려달라는 작곡가들의 요구에 회사 쪽이 드라마 <프로듀사><조선명탐정2>같은 굵직한 작품의 음원수익에 대해서는 협상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회사 쪽은 이들 작품의 음원수익은 회사가 영구히 갖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회사와 작곡가들의 싸움은 드라마 <송곳>의 ‘푸르미 마트’ 분쟁과 참으로 닮은꼴이었다. 지난 8월 <한겨레>보도를 통해 로이엔터테인먼트의 저작권 침해와 노동 착취 논란이 불거진 뒤, 이 회사가 노동문제를 다룬 드라마의 음악을 만든다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9월4일 ‘로이엔터테인먼트 대응모임’은 종합편성채널 <제이티비시>(JTBC) 김석윤 제작국장에게 공개 이메일을 보내 “드라마 <송곳>제작에 로이엔터테인먼트를 기용하지 말 것”을 요청했지만 제작진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11월5일 로이엔터테인먼트는 언론중재위원회에 <한겨레>보도를 두고 정정보도와 3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겨레>보도가 틀렸다며 로이엔터테인먼트가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출한 자료들은 하나같이 <한겨레>보도 이후 그들이 바로잡은 내용들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저작인격권 침해 실태를 고발한 ‘티브이 속 배경음악마저 ‘열정 페이’의 결과물이었나’(한겨레 8월20일치 26면) 보도가 나간 뒤 그들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처음으로 작곡가의 이름을 명기했다. 그래 놓고 11월6일 방영을 시작한 이 드라마 화면을 8월에 이미 보도한 기사를 반박하는 근거로 제출했다.

11월초 이와 관련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드라마 <송곳>시청거부 운동이 시작되자 원작자인 최규석 작가의 주선으로 교섭이 시작됐고 이 자리에 나온 방송사 관계자들은 작곡가들에게 “제이티비시가 중재에 나섰다고 에스엔에스에 글을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작곡가들은 교섭을 통해 저작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지만 드라마 종영과 함께 희망은 사라졌다.

음악업계도, 방송사도 ‘관행’을 이유로 젊은 작곡가들의 어깨를 눌렀다. 남들이 하는 대로 반복하는 행동을 관행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상식과 정의를 넘어선 ‘갑’의 권한 확대를 방치하는 것은 관행이 아니라 악습이다. 방송산업과 친밀한 제작자들이 창작자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한 뒤 그걸 관행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많다. 로이엔터테인먼트는 저작권료 배분은 ‘업계 통상’에 따랐다고 주장하지만 이 회사는 작곡가에게 30~40%를 주는 데 견줘 동종업계의 경쟁 방송배경음악 회사들은 90%를 주고 있었다. 또 내부 오디션을 통해 작곡가들을 경쟁시키고 배경음악 라이브러리를 늘리는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저작권을 회사 쪽에 영구적으로 돌리는 계약을 진행하는 관행은 업계 어디에도 없었다. 업계 1위 업체가 앞장서서 창작자 처우를 낮춰 놓고서 관행이라 주장한 것이다.

남은주 대중문화팀 기자
남은주 대중문화팀 기자
로이엔터테인먼트의 사례가 공개되면서 음악업계에서 공공연히 남의 저작권을 가로채는 일에 잠시 제동이 걸리는 듯도 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창작자가 저작권을 찾아와야 한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관행이 시작된다.

남은주 대중문화팀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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