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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이 시대 구원은 어디에 / 한귀영

등록 2015-12-13 18:50

파시즘의 군홧발이 저벅저벅 다가오고 있는 것만 같다. 설마설마하던 일이 정말로 벌어지고 있다. 국가는 우리 머릿속을 국정 사상으로 채우겠다고 선언했다. 대통령은 복면을 쓰고 집회에 참석했다며 주권자들을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에 비유하고 진압을 공포했다. 민중총궐기 지도부에게는 1980년 광주항쟁과 1986년 5·3 인천항쟁 이후 역사상 세번째로 ‘소요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이 모든 퇴행의 중심에는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절대군주 박근혜 대통령과, 그를 떠받치는 ‘국가주의’의 광신이 있다. ‘헬조선’의 아우성이 낭자한데 야당은 지리멸렬, 붕괴 직전이다. 대안 없는 시대, 이대로 종말을 기다릴까? 아니면 구원을 찾아 나설까?

지난 금요일 발표된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개개인의 행복도는 10점 만점에 6.33점으로 나쁘지 않지만, 국민들이 보는 우리 사회의 행복 정도는 중간 이하의 위험한 수준(4.98점)이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연 심포지엄 ‘더불어 행복한 경제의 꿈’에서 발표된 내용이다. 세상은 그리 행복하지 않지만 나는 그런대로 행복하다고 보는 이 조사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본시 행복이란 나와 주변, 이웃, 나아가 사회와의 관련 속에서 피어나는 관계론적 속성을 가진다. 그래서 사회적 행복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개별로만 존재하는 행복이라는 조사 결과는 위태롭다. 정치는 물론 사회의 붕괴 조짐마저 느껴지는 이 ‘불행한’ 사회에서 개인들이 애써 느끼는 ‘행복’은 섬처럼 고립된 행복이다. 실현되기 어렵고 지속되기는 더 어렵다. 그마저도 여력이 되는 소수에게만 허락된 행복일 것이다.

구원은 어디에 있을까? 작은 단서가 같은 한겨레 조사에 담겨 있다. 우리 사회의 행복을 끌어내리는 가장 큰 원인이 낮은 사회신뢰라는 결과다. 대의정치에 대한 불신은 이미 오래된 주제지만, 이제는 이웃도 믿지 못한다. 공동체는 머나먼 꿈일 뿐이다. 힘겨운 시대를 함께 버텨야 하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하니 우리 사회가 행복할 수 없다. 우리가 넘어진 곳이 여기라면, 여기서 일어서야 한다.

내가 사는 동네 파주에서 2주 전 파주시민참여연대라는 작은 지역 시민단체가 출범했다. 따지고 보면 흔한 시민단체 하나가 생겼을 뿐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생긴 주민모임이 먼 계기가 되었다. 시민들은 세월호 이후를 꿈꿨다. 나부터, 내 동네부터 변해야 한다는 소박한 다짐들이 때로는 문화제로 도보행진으로 이런저런 공부모임으로 이어졌고, 작은 결실 하나를 맺었다. 운동권들이 기회를 맞아 단체를 만든 것일까?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운동권 출신들도 동네 사람으로 참여했다. 동네 사람도 시민운동을 하게 되었다. 작년 10월 지역 주민들이 출자해 창간한 협동조합신문 <파주에서>는 ‘파주판 4대강 사업’으로 비판받는 임진강 준설사업에 대해 파주시가 찬성 서명부와 사진을 조작했다는 특종을 냈다. 동네의 공공도서관들에서는 주민들이 모여 좋은 마을을 일구기 위해 학습하고 토론하며 상상한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
파시즘은 정치상의 테러독재이기 이전에 인간에 대한 혐오에 기반한 정치체제다. 자기혐오와 상호혐오가 창궐하는 곳에서 파시즘은 쑥쑥 자란다. 파주는 오랫동안 보수적인 곳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시민적 공공성이 자라고 있다. 시민들은 아이들, 무고한 죽음 앞에서 혐오보다는 서로에 대한 믿음 쪽으로 길을 잡았다. 동네 사람들 따위가 파시즘을 막을 수 있느냐고 냉소하지 마시길. 여기가 넘어진 곳이라면 여기서 일어서야 한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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