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스웨터를 선물하려고 포장을 했다. 옷장 속에 해마다 하나쯤 사들인 스웨터가 그득해서, 나보다 몸집이 작은 친구에게 어울릴 법한 하나를 골라서 보풀을 제거하고 말끔하게 매만졌다. 떼어진 보풀들을 모아 작은 비닐봉지에 담아 친구에게 스웨터와 함께 선물할 참이다. 소매 끝에 올이 풀리고 보풀이 나달나달 달려 있는 스웨터를 입은 사람을 묘사하면서, 그의 털털함과 털털함 속에 담긴 소박한 삶과 소박한 삶 속에 담긴 삶에 대한 고집 같은 것을 단숨에 전달하던 지난 세기의 소설들이 떠올랐다. 몇 달 전 티브이에서 다시 방영한 영화 <젊은 날의 초상>에서도, 남자 주인공은 내내 그런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역시 지난 세기의 영화였다. 스웨터를 입고 등장해야 할 우리 시대의 이야기 속 인물들이 이제는 패딩을 입고 있다. 패딩점퍼에는 어떤 이미지가 실려 있는 걸까. 털털함 속에 담긴 소박한 삶이나 그 속에 담긴 삶에 대한 고집은 분명 아닐 것이다. 추위를 많이 타는 소심한 인물, 삶에 대하여 고집을 거세한 인물 정도를 함의하고 있는 걸까. 마침, 시인 여럿이 모여서 스웨터 낭독회를 개최한다고 한다. 낭독회 관람자들 모두 스웨터를 입고 입장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한 장소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스웨터를 입고 있는 자리. 나도 보풀이 나달나달한 스웨터 한 장을 챙겨 입고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잠시 지난 세기에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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