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결국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소요죄 혐의를 추가해 기소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 상황을 좀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잠시 화면을 2년 전으로 돌려보자.
2013년 12월22일 정부는 1만5천명이 넘는 경찰을 동원해 마치 청와대를 접수한 테러분자 소탕하듯 그야말로 ‘소요스럽게’ 민주노총 건물로 쳐들어왔다. 조중동 종편과 지상파 방송의 실시간 생중계는 국민들에게 공안의 공포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무릎을 꿇지 않으면 누구든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는 확실한 메시지를 준 것이다.
그날 공권력의 작전 실패는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지만, 그들이 원했던 대국민 공포 메시지 전달에는 성공한 셈이다. 어쩌면 철도노조 조합원들의 연행 여부는 그들에게 그리 큰 관심사가 아니었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권력의 무소불위한 힘의 과시였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집권 초반기부터 공안통치의 그림을 기획하고 실행해 갔을 것이다.
국가가 그 정도 인력과 비용을 지출해 거사를 치렀으면 그 상대는 무기징역이나 사형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10년 이상의 형벌 정도는 기본으로 받아야 하지 않을까. 당시 경찰 진압 상황실의 책임자는 연행 실패에도 불구하고 문책받기는커녕 승진했으며, 철도노조 파업으로 기소된 철도조합원 대부분이 무죄 확정 판결을 받거나 벌금형에 그쳤다는 것이 그 그림의 본질을 반증한다.
지난 11월14일 민중총궐기에 대처하는 공권력의 태도와 한상균 위원장 기소 혐의 역시 그런 맥락에서 봐야 이해가 가능하다. 대낮에 수천명에 이르는 경찰을 조계사 외곽에 배치하고 연행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경내 구름다리를 철거해가며 보여주고 싶었던 장면은 다름아닌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맨몸에 법복만 입고 있는 단 한 사람을 연행하기 위해 경찰 특공대들이 테이저건을 준비하는 장면도 포착되었다.
그러나 경찰은 총무원의 중재를 받아들였고 공포영화의 시나리오는 한 위원장의 죄목 부풀리기로 콘셉트가 바뀌었다. 아마 경찰청장은 특공대가 극락전 앞에서 테이저건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그 순간까지 여당 수뇌부의 엄청난 민원에 시달렸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총선 국면에 공권력의 조계사 침탈은 선거를 앞둔 여당 입장에서 공포 그 자체였을 테니까.
결국 지난 12월10일 공권력이 한상균 위원장의 연행 장면과 함께 국민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던 공포는 ‘소요죄’라는 단어로 대체되었다. 그림을 바꾼 것이다. 국민들에게 공안통치의 힘과 공포를 보여줘야겠는데 체포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주자니 그 배경인 조계사가 걸려, 하는 수 없이 죄목 키우기를 택했다고 할 수 있다.
소요죄는 아무리 공포용으로 꺼내 쓰고 싶어도 너무 낡았다는 게 그들 입장에서는 흠일 것이다. 결국 시시비비는 법정에서 가려지고,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확정한 차벽에 대한 항의 행동이 어떻게 소요죄로 적용될지는 기다려보면 되겠지만, 필경 지난 철도노조 파업 관련 판결과 그리 차이가 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대목이 있다. 한상균 위원장에게 소요죄 정도는 적용돼야 백남기 농민에 대한 공권력의 ‘테러’ 혐의가 묻힐 거라는 계산이 작동하고 있을 거라는 점이다. 공권력의 대국민 테러는 소요죄 그 이상의 범죄라는 점을 분명히 짚고 가야겠다. 일흔이 다 된 농민이 쓰러져 사경을 헤매는데도 끝까지 조준살포한 행위는 어떤 변명으로도 덮을 수 없는 용서받지 못할 국가 범죄다. 소요죄 운운할 일이 아니라 대통령이 백배사죄하고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책임자들을 즉각 파면해야 마땅하다.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기도한다.
박병우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장
박병우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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