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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1948년 8월15일 ‘역사 현장’에선 / 김삼웅

등록 2015-12-21 18:38

박근혜 정부가 기어코 2017년부터 중·고교에서 쓰일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해 “1948년 8월15일에 대한민국이 수립됐다”는 교육부 편찬기준을 마련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광복 70주년과 건국 67주년”을 공식 언급하면서 시작된 ‘건국절’ 시비가 국정 교과서 기술 방식에서 꼼수를 부리는 것으로 귀결될 공산이 커졌다.

정부가 다수 국민의 반대와 절대다수 전공 학자·교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 교과서를 강행하는 목적 중에는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기술하려는 의도도 있다.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으면 한국사에서 박정희 등 친일행위자들의 전과가 면탈된다. 그래서 친일파 후손들과 그 계열의 족벌신문과 방송, 학자들이 악을 쓰고 이를 비호해왔다.

정부는 극심한 비판여론을 피해갈 요량으로 “3·1운동의 정신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해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됐다”는 둔사를 쓰고 있지만, 헌법 전문에 반하고 역사 사실을 왜곡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것은 1948년에 대한민국이 수립됐다는 박근혜 정부와 어용 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살린 것이다. ‘건국’이란 용어 대신 ‘수립’이라고 표현했으나 내용은 다르지 않다.

더 이상 ‘역사 역행’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박 대통령과 역사의식 없이 추종하는 교육부 관리, 총대를 멘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과 어용 언론·학자들에게 1948년 8월15일의 ‘역사 현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광복 3주년인 1948년 8월15일 오전 11시부터 중앙청 광장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축하준비위원회’가 주최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 및 광복 3주년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준비위원회는 그동안 ‘정부 수립 기념 표어’를 현상 모집해 4353편 가운데 1등 당선자 없이 2, 3등만 정했다. 2등은 ‘오늘은 정부수립 내일은 남북통일’, 3등은 ‘새나라 새살림 너도나도 새일꾼’, ‘받들자 우리 정부 빛내자 우리 역사’였다. 이날 기념행사장에는 준비위원회가 마련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가’가 힘차게 울려퍼졌다.

독립운동가 오세창은 “8월15일은 해방의 날이며 정부 수립 선포의 날임에 영원히 기념할 날이다. 우리는 세계의 평화와 자유에 공헌할 것을 맹세하는 바이다”라고 개회사를 했다. 이어서 연합합창단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가’의 합창이 있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동양의 한 고대국민 대한민국 정부가 회복되어서 40여년을 두고 바라며 꿈꾸며 투쟁하여온 사실이 실현된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 미군정청 사령관이었던 존 하지 중장은 축사에서 “일본 항복 3주년인 이날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축하하도록 된 것은 한국 국민의 위대한 업적을 표시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기념행사 참석을 위해 방한한 맥아더 장군은 기자회견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끝막은 8월15일을 기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하게 된 것은 의의 깊은 일로 나는 그 앞길을 무한히 축복한다”고 언급했다.

8월15일 오후와 저녁에는 천주교 등 각계에서 ‘해방 기념 겸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날’을 경축하는 행사가 있었고, 정부는 ‘정부 수립 기념우표’를 제작하여 판매하였다. 각 신문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 또는 ‘대한민국 정부 선포식’을 큰 제목으로 뽑아 이날 행사를 보도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정부와 어용 언론·학자들은 이러한 역사현장을 모르는가, 알고도 ‘친일파 덮기’를 위해 억지를 쓰는가. ‘역사’를 왜곡하면 반드시 역사의 필주(筆誅)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한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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