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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선물 / 박순빈

등록 2015-12-27 18:47

연말연시를 맞아 선물 오가기가 한창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올 연말 선물용품 판매가 예년보다 늘었다고 한다. 선물 수요만큼은 경기 부진을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이다.

선물을 주고받을 때에는 누구나 그 속에 담긴 ‘마음’만 잰다. 크기를 따지면 선물인지 뇌물인지 판단해야 한다. 선물과 뇌물의 경계는 참 모호하다. 법적으로는 대가성이 있느냐 없느냐로 따지는데, 이 또한 일상생활에서 명확한 잣대로 삼기 쉽지 않다. 영국의 기업윤리연구소(IBE)는 ‘물건을 받고 잠을 잘 못 이루면 뇌물이고 잘 자면 선물’, ‘자리를 바꾸면 못 받는 것은 뇌물이고 바꾸어도 받을 수 있는 것은 선물’이라는 구분법을 내놓기도 했다.

서구 경제이론으로 보면, 선물 교환은 이상한 행위다. 시장경제에서 거래는 서로 합의한 가격을 매길 수 있을 때 이뤄진다. 그런데 선물은 서로 값을 매기지 않고 거래된다. 그래서 받는 쪽에선 정확한 대가를 지급할 방법이 없다. 기독교적 관념에선 이런 대가 없는 선물은 오로지 하느님의 구원뿐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대가 없는 선물이 경제체제의 기둥이었다. 인류학계가 발견한 사례가 꽤 있다. 대표적으로 북미 대륙 북서부 연안의 원주민들 사이에 만연했던 ‘포틀래치’(potlatch)라는 겨울 축제를 꼽을 수 있다. 이는 이웃 부족들끼리 해마다 한 번씩 모여 선물 경쟁을 벌이는 축제이다. 다른 부족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산사태와 같은 선물’을 베풀어야 승자가 가려졌다. 이런 축제로 부족공동체의 중심을 자연스럽게 형성하고 생산·분배의 기본구조를 갖췄다. 그러나 포틀래치는 유럽에서 온 이주민들로부터 소멸당했다.

공동체란 서로 너무 많은 빚을 져서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지도 잊어버린 사람들끼리 구성된다는 말이 있다. 올 세밑새해엔 포틀래치처럼 ‘산사태와 같은 선물 빚들’로 가득했으면 싶다.

박순빈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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