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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다시 금강산이다 / 박병수

등록 2015-12-27 18:50

돌고 돌아 다시 금강산 관광이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11~12일 남북 차관급 회담이 열렸으나, 결국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에 걸려 결렬됐다. 금강산 관광이 멈춰선 게 2008년 7월 관광객 피격 사건 직후이니, 7년 전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남쪽은 이산가족 등을 의제로 제시하면서 금강산 관광 문제는 따로 실무회담을 열어 논의하자고 제안했고, 북쪽은 이산가족 상봉 등과 금강산 관광 재개의 동시 이행으로 맞섰다. 동시 추진이면 어떻고 별도 추진이면 어떨까 싶다. 할 의지만 있다면 선후가 그리 대수겠는가.

그런데도 끝내 결렬된 것은 그만큼 남북간 신뢰가 낮다는 뜻일 게다. 북쪽은 남쪽의 관광 재개 의지를 못 믿었을 것이고, 남쪽은 북쪽의 의도가 불순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3년이 다 되도록 ‘신뢰 프로세스’를 외쳐댔으나, 아직도 남북간 신뢰가 바닥인 건 유감이다. 북쪽을 탓하고 싶겠지만, 애초 신뢰 프로세스가 ‘북한이 상식과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 구상된 것 아닌가. 누구에게 책임을 떠넘기겠는가.

사실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는 관광이 장기간 중단되면서 복잡해졌다. 북쪽은 2010년 금강산에 투자된 남쪽의 자산을 몰수·동결했고, 이듬해엔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을 제정해 현대아산의 관광 독점권을 취소했다. 2008년 이전처럼 곧바로 관광이 재개되기 어려운 제도적 장벽이 세워진 셈이다. 남쪽이 이번 회담에서 관광객 피격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관광객 신변안전, 재발방지책 마련 등 기존의 3대 선결조건과 함께 사업자 권리 보호를 관광 재개 조건으로 추가한 건 이런 북쪽의 일방 조처를 겨냥한 것일 게다. 그러나 3대 선결조건이든, 사업자 권리든, 의지만 있다면 길이 없겠는가.

박근혜 정부에 금강산 관광 재개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많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금강산 관광은 그동안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퍼주기’로 몰아붙일 때 끌어들이는 핵심 사례였다. 유엔의 대북제재 대상이라는 논리도 동원되고 있다. 금강산 관광 대가가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에 도움을 주는 벌크캐시(대량 현금)라는 것이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도 18일 관훈토론회에서 “금강산 관광 대가가 벌크캐시다 아니다라는 논란은 규정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 문제가 논의될 시점에 가서 판단해야 한다”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벌크캐시에 대한 유엔 제재가 “은행 거래를 우회하기 위한 목적으로 불법 획득한 현금을 인편 등 수단을 통해 운반하려는 시도에 대응하고자 하는 취지”이고 “은행을 통한 정상적인 상업거래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건 통일부가 지난해 3월 박주선 의원에게 제출한 답변에서도 밝힌 바 있다.

북쪽이 1998년 11월부터 2008년 7월까지 받은 금강산 관광 대가는 4억8600만달러(대략 5천억원)로, 한 해 500억원 남짓 된다. 남북관계 개선의 마중물에 이 정도가 아까운가. 박근혜 정부 첫해 개성공단은 운행 중단을 겪었고, 올여름엔 목함지뢰 사건으로 일촉즉발의 순간까지 갔다. 남북간 끝간 데 없는 긴장고조로 치른 우리 사회의 비용이 이보다 적을까.

홍 장관은 이산가족 문제가 인도주의 사안으로 금강산 관광과 연계될 수 없는 별건이라고 했다. 별건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인도주의는 돈과 맞교환하면 안 되나. 통독 전 서독은 동독에 돈을 주고 정치범을 데려오는 ‘프라이카우프’를 베를린 장벽 붕괴 전까지 25년간 시행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박병수 선임기자
이제 박근혜 정부 4년차가 된다. 여전히 곧 북한이 두 손 들고 나올 테니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된다고 믿는 건가.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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