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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천만 사표의 노래 / 김우재

등록 2015-12-28 19:01

분노하지 못해 지는 게 아니다. 어디에 분노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지는 것이다. 국무회의에서 남 탓에만 열중하는 대통령, 그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여당, 그 여당을 견제하기보다 분열에 몰두하는 야당, 그리고 여야 한통속으로 잇속만 챙기려는 선거구 획정, 분노할 대상은 산개되어 있다. 하지만 분노는 집결되어야 한다. 나열된 부조리들이 단 하나의 근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 시국의 타개는 그 근원을 치료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그것은 분노한 민심이 합법적으로 노래하게 하는 것이다. 바로 선거제도의 전면적인 개혁이다.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43.3%에 불과한 득표로 전체 의석수의 51.6%를 얻었고, 민주당은 37.9%로 43.1%를 가져갔다. 민주당은 호남 지역에서 겨우 53.1%의 지지율로 83.3%의 의석을, 새누리당은 영남 지역에서 54.7%의 지지율로 무려 94%의 의석을 차지했다.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대표하는 두 정당은 군소정당의 표를 빼앗아간 것도 모자라, 국민 절반의 민심을 죽은 표로 만들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공고히 했다. 한국의 선거제도는 잘못되어도 뭔가 크게 잘못되어 있다.

1988년 13대 총선부터 2012년 19대 총선까지, 쓰레기통에 처박힌 사표가 7천만표를 넘는다. 4년마다 1천만의 사표가 발생한다. 그렇게 버려진 사표는 고스란히 국회의원들의 천박한 기득권을 다지는 일에 쓰인다. 투표는 국민의 권리이자, 축제여야 한다. 하지만 투표율은 계속 하락 중이고, 정치권은 신경쓰지 않는다. 국민이 정치를 혐오할수록 지역 구도가 강화되고, 그들의 기득권이 공고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국회의원들의 이기적 유전자다. 바로 이 단순한 이유로, 아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선거제도의 개혁이 미뤄지고 있다. 그들은 이미 자신이 승리한 제도를 바꿀 이유가 없다. 국회의원들이 선거제도 앞에서는 모조리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따라서 이 문제는 직접민주주의로 해결되어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국민투표가 필요하다.

선거제도는 유권자의 뜻을 왜곡해선 안 된다.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수 비율은 일치해야 한다. 지역대표성은 물론 비례성을 갖춘 제도가 가장 이상적이다. 수백년에 걸친 민주주의 실험은 대강의 답을 이미 찾아두었다. 선거제도의 전문가들은 민심이 정확히 반영되는 선거제도로 독일식 연동제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국처럼 행정부의 독재와 양당제의 폐해를 경험했던 뉴질랜드도 국민들의 여론에 무릎 꿇고 독일식 연동제를 도입하면서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국회의원에 대한 혐오를 국회의원 수 축소로 이어갈 필요도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으로만 따져도 한국은 514명의 국회의원이 필요하다. 차라리 국회법을 보완해 국회 총예산을 적절히 동결하고,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제한하고 입법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게 만든다면,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일은 결코 국민들에게 해가 되는 일이 아니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2016년 4월, 다시 1천만의 사표가 발생할 것이다. 이 천만의 사표가 합법적으로 분노할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길을 터주지 않은 물길은 반드시 흘러넘치는 법이다. 지금 단 하나의 일격이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선거제도의 개혁이다. 새로운 한국을 꿈꾸는 모두는, 바로 그 일격을 위해 함께 외쳐야 한다. 천만의 사표가 노래할 수 있도록.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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