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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응답하라 1988’의 북핵

등록 2016-01-11 18:42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당시의 모든 것을 추억거리로 끄집어낸다. 1988년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북한 핵이다. 1988년 9월 프랑스 상업위성 스포트가 촬영한 영변 핵시설 위성사진으로 북핵은 국제사회에 등장했다.

북한과 주변국 모두 ‘응팔’의 인기에 편승하는 모양이다. 드라마의 전개에 맞춰 호응해줬다. 북한은 6일 ‘수소폭탄’ 실험으로 북핵판 응팔을 시작했다. 주말인 9일 응팔은 1994년으로 시공간을 건너뛰었다. 미국이 다음날인 10일 바로 호응했다. B-52 전략폭격기로 한반도에서 무력시위를 했다. 1994년 미국이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겠다며 전략무기들을 한반도로 겨냥하던 상황을 연상케 한다.

드라마 응팔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의 주인공 덕선과 주변 남자친구 4명의 알콩달콩한 우정과 사랑의 얘기이다. 북핵 응팔은 겉으로는 미움받는 북한과 주변 4개국들의 겉과 속이 다른 밀고 당기기이다. 드라마 응팔은 이제 94년이란 시공간에서 대단원을 내릴 것 같다. 그러나 북핵 응팔은 지저분한 얘기의 막장 드라마로 계속될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보좌관 가와이 가쓰유키 자민당 의원은 북한 핵실험 다음날인 7일 <워싱턴 포스트>인터뷰에서 “그거 아주 적절할 때 일어났네요”라고 반응했다. 그가 인터뷰한 기사의 제목은 ‘위안부 합의가 아시아태평양에서 미국에 전략적 이득을 제공한다’이다. 벤 로즈 백악관 부안보보좌관은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몇 년 동안 일본과 한국의 지도자들과 가졌던” 거의 모든 회의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위안부 합의의 배후는 미국이고, 이는 한-일 관계를 복원해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군사·경제적 부상을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것은 익히 추측하는 내용이다. 미국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지난 몇 년 동안 공을 들였다. 오바마를 미워하는 존 매케인 등 공화당 중진 의원들도 출동했다. 막판에는 존 케리 국무장관이 진두에 서고, 마크 리퍼트 주한대사와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대사가 한·일 양국을 채근했다.

위안부 합의가 한·일 국내 반발로 흔들릴 때 북한 핵실험이 발표됐다. 가와이 의원은 북핵 실험 24시간 안에 아베와 박근혜는 통화를 하며 그 골치 아픈 문제 해결을 통해서 쌓은 ‘신뢰의 관계’를 보여줬다며, 위안부 합의는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미·일은 북한의 핵실험에 겉으로는 펄펄 뛰지만, 화장실로 가서는 ‘생큐’라며 반색했다고 할 수 있다.

위안부 합의로 고개를 못 들던 박 대통령은 10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북핵 문제로 5주 만에 지지율이 반등했다. 박근혜 정부가 안보를 팔아서 지지율 제고에 흐뭇해할 정도로 저질은 아닐 거다. 그렇지만 떡고물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북핵의 효과는 3개월 남짓 남은 총선 때까지 지속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미·일과 더 세게 팔짱 끼고 싶었다. 이제 눈치 볼 필요가 없게 됐다.

북한 핵실험에 중국은 상대적으로 곤혹스러우나, 길게 보면 다르다. 중국의 역할론이 더 커지고, 북한에 대한 지렛대는 이제 중국이 더 독점하게 된다. 한-미-일의 남방 해양 동맹 강화에 맞서는 북-중-러의 북방 대륙 협력에 더 박차를 가할 거다.

1994년 제네바 북-미 합의 뒤 북한의 핵 철거를 현장에서 감시했던 조엘 위트 ‘38노스’ 대표는 9일 <뉴욕 타임스>에 ‘북한은 얼마나 미쳤는가?’라는 기고에서 한 북한 관리의 말을 전했다. “왜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은 북한에 핵무기 보유를 허용하지 않을 거라고 계속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이를 막을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가? 미국은 동맹인 한국과 일본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하려는 구실로 우리의 핵무기 보유를 원하기 때문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정의길 선임기자
우리는 진짜로 북한의 핵 개발을 막으려고 하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북핵 응팔이라는 막장 드라마가 29년 동안이나 계속된단 말인가? 1988년 신문에 실린 영변 핵시설 위성사진을 보면서 시작된 나의 기자 생활은 은퇴할 즈음이면 북한의 중성자탄 실험 소식을 들을 것 같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m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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