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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맹섭씨의 10년치 월급 / 박점규

등록 2016-01-11 18:44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해고자 서맹섭은 이달 말 평택공장으로 출근한다. 2003년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해 2009년 해고된 뒤 7년 만이다. 7년 전에는 하청이었지만 이번에는 정규직이다. 그를 포함해 6명이 직영 작업복을 입고 티볼리를 만든다.

1년 전이었다. 쌍용차 해고자 김정욱, 이창근이 복직을 요구하며 공장 굴뚝에 올랐다. 티볼리 출시 기념으로 한국에 온 인도 마힌드라그룹 회장이 해고자 대표인 금속노조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을 만난 후, 해고자 복직을 논의하는 노사 교섭이 열렸다. 하지만 교섭은 쉽지 않았다. 특히 비정규직 해고자에 대해 회사는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정규직 지위를 확인하는 소송이 진행 중이니 대법원 판결이 나면 채용하겠다고 했다. 현대자동차도 풀지 못한 불법파견을 작은 회사에서 해결할 수 있겠냐는 논리였다. 이 때문에 서맹섭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교섭위원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2010년 대법원에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도급이 아니라 파견이기 때문에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판결이 났다. 유사한 판결이 일곱 번이나 나왔다. 하지만 현대차 노사는 2014년 근속을 일부만 인정하는 신규채용 방식에 합의했다. 함께 싸운 조합원 모두가 정규직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비정규직 해고자는 하청업체로 복직한 후 신규채용에 응시해야 정규직 채용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정몽구 회장을 처벌하지 말아달라는 탄원서까지 써야 했다.

현대차 합의는 반면교사가 됐다. 쌍용차 노조쪽 교섭위원들은 비정규직 문제가 최우선 과제라는 원칙을 세웠다. 하청업체 복직이나 ‘현대차식 신규채용’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경력을 100% 인정하고, 해고 기간 임금도 지급하라고 했다. 하지만 회사는 ‘절대 불가’였다. 정규직의 복직 시한 명시 및 비정규직 문제로 교섭이 난항에 빠졌다. 10개월이 지났지만 제자리였다.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모였다. 쌍용차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손잡고 공장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자고 했다. 체불임금 말고는 양보할 게 없었다. 대신 비정규직 조합원 6명 모두가 정규직으로 복직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6명 중 넷은 정규직 소송 1심에서 승소했고, 두 명은 1심 소송 중이었다. 불법파견의 핵심인 근속을 인정받는다면 돈을 내려놓자고 했다. 조합원들의 마음을 모은 서맹섭이 아내에게 얘기했다. 네 명의 아이를 키우며 견뎌온 세월, 정규직으로 일해 한 푼도 안 쓰고 10년을 모아야 할 돈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었다. 쌍용차 비정규직이 법원에서 승소한 건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고, 선배들이 먼저 싸웠고 이름 없는 수많은 이들이 연대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체불임금을 받아도 비정규직을 위한 일에 써야 한다고, 그는 아내를 설득했다.

교섭이 급물살을 탔다. 2016년 1월 말까지 6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근무경력을 온전히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합의서에는 하청업체 입사일, 고용간주일, 근속연수와 호봉까지 명시했다. 12월14일 마침내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서맹섭은 첫 월급을 받으면 ‘비정규 노동자의 집’(www.laborhouse.kr)에 기부하고 비정규 노동자들과 연대할 생각이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현대자동차 노사가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재개했다. 2013년 현대차 비정규직 희망버스로 50명 넘게 재판을 받고 있다. 한 대학생은 입대해서 군사재판을 받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응원하고 함께 싸운 곳, 불법파견의 대명사인 현대차가 어떤 합의를 할지 몹시 궁금하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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