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광주대전’ 관전법 / 안관옥

등록 2016-01-26 18:57수정 2016-01-27 22:36

소설 <삼국지>를 읽으면서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적벽에서 조조를 막아냈던 유비와 손권이 앙숙으로 갈라서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1800년 전 중국은 위-촉-오가 다투는 삼국시대였다. 약한 촉과 오는 남하하는 조조의 100만 대군을 막아야 했다. 촉과 오는 힘을 합쳐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촉과 오는 형주(후베이성 남부의 징저우)를 차지하려고 각축을 벌인다. 형주는 장강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중원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였다. 애초 촉의 영토였던 형주는 기습 작전으로 오의 수중에 떨어진다. 형주성의 관우가 최후를 맞으면서, 동맹에서 원수로 바뀐 촉과 오는 60여년을 싸운다. 강한 위를 앞에 두고 형주대전을 벌인 촉과 오는 결국 차례로 멸망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최근 광주의 형국은 얄궂게도 이 줄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야권의 심장부인 광주에서 치열한 세대결을 벌이고 있다. 양당은 지난주 사흘 간격으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광주시당 창당 행사와 영입인사 콘서트를 치렀다. 보란듯이 지지자 1천여명씩을 모아 세력을 겨뤘다. 또 더민주는 동교동계 가신들이 떠나가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을 데려오며 맞불을 놨다. 세 불리기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졌다. 국민의당이 천정배 의원과 합치자, 더민주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을 잡았다. 등장인물이 날마다 늘어나며 판이 커지고 있다.

광주시민들은 5·18과 6·10 등 현대사의 고비마다 새로운 진로를 여는 선택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인권·민주 등 보편가치를 위해 생명을 걸고 저항했고, 투표장에 앞다퉈 나갔다. 양당은 응집력이 강한 광주의 민심을 잡아야 전국으로 세 확장이 가능하다며 공을 들여왔다.

이 여파로 광주에선 양당의 공과를 두고 입씨름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정권 교체를 약속하는 문재인을 향해선 “여태껏 뭐 했냐”고 반문하고, 안철수를 두고는 “2012년에 잘했어야지”라고 힐책한다. 안철수와 문재인이 광주에 와서 이러지 말고 고향인 부산에서 나란히 출마하면 어떠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시비는 분명하다. 한상진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이 하필이면 4·19묘지에서 “이승만은 국부”라고 말한 데 대해 귀를 의심한다. 김종인 더민주 선거대책위원장이 국보위 입법회의 전문위원이었다는 전력을 두고는 ‘자랑이 아니다’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시민단체들은 “독점이 깨지고 경쟁이 복원돼 반갑지만, 양당이 경쟁적으로 보수화하고 있다”고 경계하기도 한다.

총선을 77일 앞둔 현재의 상황은 백중세로 보인다. 국민의당은 광주의 국회의원 8명 중 5명을 영입해 한집을 냈다. 더민주는 문 대표가 물러나 지지율이 반등하면서 세력을 얻었다. 2~3월에 공천 후보의 면면이 드러나면 시민들의 평가는 더욱 엄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탈당파가 많은 국민의당에 시선이 쏠려 있다. 대항마를 찾는 더민주도 고심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시민 김민경(40·여)씨는 “광주에선 후보만 제대로 내면 된다. 양당이 ‘양지’인 광주보다는 ‘험지’인 서울·부산·대구에 가서 힘써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안관옥 호남제주팀 기자
안관옥 호남제주팀 기자
양당이 경쟁하면서 광주 선거구마다 10여명의 입지자들이 불꽃 대결을 예고하고 있다. 벌써부터 ‘정체성이 뭐냐’, ‘기득권 세력이다’라는 등의 가시 돋친 설전이 이어지고 있다. ‘광주대전’이 본격화한 것이다. 총선에서 맞서는 양당이 촉·오의 실패를 거울로 삼았으면 한다. 눈앞의 형주에 매몰돼 중원의 낙양을 잊어서야 되겠는가. 예선에서 힘 빼고 본선을 망치면 이득을 보는 자는 누구인가?

안관옥 호남제주팀 기자 okah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