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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개성공단 중단의 법적 근거를 묻는다 / 김광길

등록 2016-02-15 20:18수정 2016-02-15 21:56

정부는 10일 통일부 장관의 ‘정부 성명’을 통해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처를 발표했다. 이 조처는 법적 근거 없이 취해진 것으로 무효다.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한다는 정부의 성명은 우리 국민이 북한 지역을 방문할 때 필요한 통일부 장관의 방문 승인을 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집행될 것이다. 개성공단을 방문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입주기업 등 투자자한테 자기 소유 재산의 사용·수익을 전면 차단하는 것이므로 재산권을 수용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헌법 제23조는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하려면 국회가 입법한 근거 법률이 있어야 하고, 이 법률에는 헌법 제23조에 따라 정당한 보상이 규정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조처는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우리 국민의 재산권을 수용한 것이므로 헌법 제23조에 위반된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 합법적이려면 적어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17조나 제18조에 따라 개성공단 기업한테 이미 승인한 협력사업을 취소하거나 조정을 명령해야 한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른 협력사업 취소나 조정명령은 발동 요건과 청문 등의 절차가 정해져 있다. 그러나 이번 조처는 이러한 요건과 절차를 전혀 따르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에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아니다. 헌법은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에 대통령한테 긴급한 조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헌법 제76조에서 규정한 긴급재정경제명령과 긴급명령이다. 대통령은 상황이 긴급하다 하더라도 헌법에 정해진 형식과 절차를 따라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법치주의의 요구이다. 헌법 제76조의 긴급재정경제명령과 긴급명령은 발동 뒤에 지체 없이 국회의 승인을 얻는 등의 절차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는 정부의 이번 조처는 대통령이 행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 즉 이른바 “통치행위”이므로 위법성을 따질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상 법치국가 원리에 비추어 볼 때 통치행위라는 개념 자체를 인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통치행위라 하더라도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확립된 판례다.

나는 2004년부터 2013년까지 개성공단관리위원회 법무팀장으로 일했다. 이 기간에 북한 사람들을 상대로 개성공단을 성공시키려면 투자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중요하며 그러려면 법치주의가 중요하다고 수없이 강조했다. 우리가 뚜렷한 법적 근거도 없이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하면 북한한테 법치주의를 요구할 근거가 없게 된다.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하더라도 우리 헌법의 법치주의가 요구하는 절차를 지켜야 한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맞서 11일 개성공업지구를 폐쇄하고 우리 기업의 재산을 전면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생산된 제품이라도 가지고 나와 피해를 최소화하고 싶은 입주기업한테는 설상가상이다. 다만 북한이 우리 기업의 재산을 동결한다고만 하고 몰수한다고 하지 않은 것은 이후 채권채무를 정산하기 위한 여지를 둔 것이어서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기대하고 싶다. 사이가 틀어져 별거하게 된 부부가 이혼을 위한 재산분할 협상 과정에서 서로 화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협상이 재개된다면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 남북 공동번영의 소중한 옥동자인 개성공단을 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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