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이라 했던가. 봄기운이 드는가 싶더니 찬바람이 드세다. 어떤 정세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개성공단이 전격 폐쇄되면서 한반도에 거센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개성(송도)은 고려의 옛 도읍지다. 남북이 이곳에 2004년 경제특구를 만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남쪽의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이려는 북쪽과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려는 남쪽의 의도가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기업 활동이 활성화하고 민간인 내왕이 잦아지자 2007년엔 개성 관광의 문이 활짝 열렸다. 남쪽 사람들은 송도삼절 중 하나인 박연폭포, 정몽주의 충절이 깃든 선죽교 등을 둘러보며 남북 교류협력의 새로운 장이 열렸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개성은 북한에게 군사요충지다. 서부전선 전방사단에 근무할 때 한반도 유사시 개성~문산 1번 국도가 북한군의 핵심 침투로라는 것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이는 우리 군도 마찬가지다. 구파발에서 파주, 문산을 거쳐 개성으로 향하는 통일로는 평양, 신의주로 진격하는 축선이다. 그 길목에 개성공단이 있다.
군사적 위협감은 남북 공히 받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북한이 위기의식을 더 크게 느낀다고 한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개성을 ‘경제특구’로 남한 기업들에 내준 것은 당시 북이 내린 큰 결단이었다. 1998년 ‘소떼 방북’으로 남북 민간교류의 물꼬를 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조차 개성공단 제안에 깜짝 놀랐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남북은 수십년 동안 분단의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웠다. 금강산 관광에 이어 실시된 개성 관광은 반세기에 걸친 강고한 폐쇄의 장막을 걷어내는 화해의 마당이었다. 그렇기에 개성공단은 남쪽의 자본과 기술, 북쪽의 토지와 인력이 결합하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정부 주도 사업이었다. 이곳을 생계 터전으로 삼아온 남쪽 입주기업과 협력업체는 5천여곳, 북의 노동자는 5만5천명이다. 북한 주민 중 최소 20만명의 생계가 공단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0여년간 일촉즉발의 남북관계 속에서도 개성공단은 최후의 보루였고 안전판 구실을 했다. 2010년 천안함 사건이 터지고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은 개성공단 폐쇄라는 최악의 무리수까지 두지는 않았다. 대북정책에서 누구보다 강경 기조를 유지했던 그가 아니었던가.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개성공단 폐쇄를 두고 “국가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힌 것은 허투루 들을 일이 아니다. 천안함, 연평도 사태 때도 무디스는 꿈쩍하지 않았다.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추진 등 안보 이슈들은 안 그래도 어려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돼버렸다. 사드 배치에 반발하는 중국이 경제 보복에 나설 경우 한-중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 있다.
올해 1월 수출은 전년 동기에 비해 18%나 급감했다. 청년실업률은 1월 기준으로 16년 만에 최고치다.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하는 시기에 수출, 내수, 고용 등 주요 지표는 줄줄이 하강 국면이다. 남북관계가 아니더라도 경제적 한파에 혹독한 시기를 보낼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판이다. 여기에 ‘코리아 리스크’까지 덮친다면 그 여파를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개인이든 국가든 여지를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기 확신이 지나쳐 막다른 길로만 가면 뒷감당이 어렵다. 남북관계의 마지막 상징을 무너뜨린 데 대한 무디스의 경고가 심상치 않다.
홍대선 경제데스크 겸 산업1팀장 hongds@hani.co.kr
홍대선 경제데스크 겸 산업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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