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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복권식 비례대표제 / 김우재

등록 2016-02-29 19:04수정 2016-02-29 19:33

비례대표의 정식 명칭은 ‘비례대표 전국선거구 국회의원’이다. 여야는 헌법재판소가 정한 기한을 넘겨 비례대표의 수를 7명 줄이는 데 합의했다. 선거제도란 소수 정당지도부의 폐쇄적 합의로 채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 대부분의 가치적 열망이 반영되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어야 한다.

이상적인 선거제도란 없다. 민주주의는 계속 진화하고 있으며, 매일 선거제도의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의 비례대표제는 완전 폐지하거나 전면적 개혁을 통해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에선 비례대표제가 추구하는 가치가 완전히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례대표제의 고안은 더 나은 선거제도를 찾기 위한 열망이다. 역사적으로는 소수자 보호라는 민주정신과 각 정치세력의 지지도를 정확히 반영하는 대의제의 실현 형태다. 한국에선 헌법 제1조 제1항의 ‘민주공화국’ 규정을 토대로, ‘공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시되는 ‘민주’라는 국민 지배를 되살리는 일이다. 물리적으로 이 제도는 단순다수제 아래서 나타나는 정당 득표율과 의석 비율의 괴리를 경감시켜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의 비례대표제는 엉망이다. 첫째, 정당에 종속되어 있다. 정당만이 비례대표의 공천권을 지닌 합법적 정치세력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무당층은 30%를 넘는다. 현재의 비례대표제도는 국민 30%의 의사를 무시하는 제도라는 뜻이다. 이는 헌법의 기본권을 위반한다. 한국의 비례대표는 ‘정당할당대표’라 불러도 된다. 둘째, 비례대표 당선인 통계자료를 보면, 크게 정치인, 전문가, 전국적 직능단체 대표자 등으로 나뉘지만, 지역구 의원의 직업 분포와 큰 차이가 없다. 비례대표가 보완해야 하는 국민 대표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현재의 제도에서 완벽하게 대표되는 것은 성별뿐이다.

마지막으로, 비례대표의 선출과정 자체가 비민주적이다. 정당 지도부의 폐쇄적인 하향식 절차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이는 박정희 정부 시절의 통일주체국민회의보다도 비민주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례대표란 정당에 오래 충성해온 정당인들의 보상품으로 전락했다. 헌법 제8조 제2항은 정당이 민주적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현재의 하향식 정당명부 작성은 민주적 방식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비례대표가 이렇게 엉망이라면, 7명을 줄일 것이 아니라 완전히 폐지하는 게 맞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비례대표의 수가 적다는 것이다. 지역구 의원과 비슷한 규모로 늘리지 못할 바에야 없애는 것이 현실적이다. 우리와 함께 대표적인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은 비례대표 제도가 없다. 현실적으로 비례대표 제도를 폐지해도 국정운영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만약 비례대표 제도를 존치시킨다면 몇 가지 대안이 있다. 우선 비례대표가 선거권자를 모사하는 민주적 가치에 중점이 있다면, 공화적인 제도인 선거보다 민주적인 제도인 추첨을 비례대표 선거에 활용해 볼 수 있다. 비례대표를 원하는 국민들의 명부를 작성해서 성별, 직업, 학력, 재산, 종교, 연령 등의 변수를 가중치로 추첨한다. 복권식 비례대표제다. 이 경우 지역구 의원은 공화의 가치를, 비례대표 의원은 민주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다. 추첨이 싫다면 정당 소수 기구가 아닌 전당대회 형식의 상향식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전문가 그룹의 강화를 위해선 상임위원회 중심으로 비례대표를 선거로 선출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만하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1789년 미라보 백작은 “대의기구는 언제나 인민의 축소판이어야 하며, 의회 내의 의견들, 열망들, 소원들은 원본에 정확히 비례해서 제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비례대표란 그런 것이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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