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여성대학이다 그러면 뷰티라든가 뭐 여러 가지 감성적인 여학생의 특성에 맞는 그런 게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할 정도로 여성 교육에 대해 떠올리는 내용이 빈곤하다. 듣다가 민망해서 얼른 꺼버렸다. 그 와중에 ‘노동개악’을 좋은 약과 처방전, 몸에 맞는 옷으로 표현하며 되도 않는 비유를 한다.
역대 정부 최초로 대통령의 비유집이 나왔다. 수사는 지성을 잘 함축해서 보여준다. 대통령의 수사는 종종 극단적이고, 배려가 없으며 흉측하다. 자극적인 수사에 비해 문장 구조는 제멋대로 붕괴 직전에 있다. 주술관계는 엉망이며 어휘가 빈곤하여 이렇게, 저렇게처럼 분명하지 않은 표현이 산재해 있고, 동사를 생략한 채 얼버무리는 문장과 이런, 그런, 저런과 같은 군더더기가 많고, 국민이 다 아는 단어도 혼자 엉뚱하게 말한다. 메시지는 없고, 메신저는 화를 낸다. 종종 초자연적 기를 뿜는다. 그가 어떤 우주의 도움을 받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범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혼을 가졌음은 분명하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의 말을 다 듣고 나면 전체적으로 그런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은수미 의원이 필리버스터 중 ‘말’에 대해 말했다. “참 말이 중요한 거 같아요. 말이 형식인 것 같지만 그 사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물론이다. 메시지의 효과적 전달을 위해 사용되는 수사는 때로 메신저가 누구인지 알려준다. 페미니스트를 나치로, 식당에서 간장종지가 사람 수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아우슈비츠로, 시민을 아이에스(IS)로 비유하는 피해망상형. 자연훼손을 강간, 가족을 살해한 ‘가장’을 시대의 계백이라 하는 성차별형. 흑인의 얼굴을 연탄에 비유하는 인종차별형. 모두 발화자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자가당착형 비유도 있다. 사르코지 프랑스 전 대통령은 얼마 전에 출간된 자서전이 비판받자 <페드르>로 혹평받았던 라신과 자신을 비유했다. 비판은 잊혀도 라신은 남았다며. 스티브 잡스로도 부족했는지 안철수 의원은 자신을 버니 샌더스에 비유했다.
“물에 빠뜨려”라는 말은 반사회성 인격을 가지지 않은 이상 적어도 공직에 있는 사람이 공식 석상에서 쓸 수 없는 비유다. 대통령의 입에는 인격이 없다. 공익을 위한 입, 언론은 이전 정부부터 오염되고 막혔다. 말에 체한 사람들은 갈수록 ‘사이다’ 같은 말을 찾고 있다. 말의 ‘사이다 효과’를 딱히 지향하지 않지만 그만큼 말의 체증이 심한 현상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들의 비상사태’ 덕분에 요즘 메시지가 울려퍼졌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이청준의 <소문의 벽>, 코리 닥터로의 <리틀 브라더>, 브레히트와 김남주의 시에 이르기까지 의회 안에서 문학이 흐른다. 메시지가 있는 메신저들의 수사는 풍성하다. 테러방지법과 별개로 관전 포인트도 다양하다. 말 같은 말을 듣는 반가움, 여성 정치인의 말을 듣는 값진 기회, 각각 하나의 이야기책처럼 다양한 개인사와 개성, 포옹과 응원이 오가는 인간적 연대. 말이 회복되자 정치의 회복, 나아가 인격적 관계의 회복이 가능해 보인다. 비록 한시적일지라도.
‘노오력’을 말하는 대통령은 이해하지 못할 비유를 소개한다. “우리의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학교에 결코 홀로 오지 않는다. 교실에 들어서는 것은 한 개의 양파다. 수치스러운 과거와 위협적인 현재와 선고받은 미래라는 바탕 위에 축적된 슬픔, 두려움, 걱정, 원한, 분노, 채워지지 않는 부러움, 광포한 포기, 이 모든 게 켜를 이루고 있는 양파.”(다니엘 페낙, <학교의 슬픔>) 타인과 연결되지 않은 존재인 대통령은 켜켜이 싸인 양파의 고통스러운 언어를 이해할 리 없다.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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