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라벨(1875~1937)은 키 158㎝, 몸무게 48㎏이었다.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컸고 두 엄지는 돌출한데다 새끼손가락과 약지는 간격이 벌어졌다. 진한 적포도주를 즐겼고 골초에다 커피광이었다. 1914년 1차대전이 일어나자 프랑스군에 지원했지만 체중 미달로 탈락했다. 15년 3월 다시 운전병으로 자원입대했다. 16년 9월 말 복막염으로 후송된 뒤 11월 집으로 보내졌다. 요즘 말로 ‘의병 제대’다.
지난달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1차대전 전후에 작곡된 곡을 중심으로 새 앨범 <모던 타임즈>(데카)를 냈다. 프로코피예프, 스트라빈스키의 곡도 담겼지만, 주목을 끈 곡들은 라벨 작곡의 ‘쿠프랭의 무덤’과 ‘라 발스’였다. 손열음은 앨범을 내면서 라벨에 대한 생각을 털어놨다. “라벨은 전쟁에 대한 충격으로 3년 동안 작품을 쓰지 못했고 그 이후에 거의 처음 쓴 작품이 ‘쿠프랭의 무덤’이다. 라벨은 그 이후 작품세계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볼레로는 굉장히 사이코틱하지 않나. 저는 전쟁이 개인과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졌고 여러분도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다.” 라벨이 제대한 뒤 그의 어머니가 숨을 거뒀다. 전쟁에 이은 어머니의 사망은 라벨의 일생에서 가장 큰 상실이었다.
전쟁과 라벨의 인연은 질겼다. 1차대전에서 오른팔을 잃은 피아니스트 친구를 위해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작곡했다. 왼손을 위한 곡에선 오른손의 결핍을 느낄 수 없다. 라벨의 친구는 파울 비트겐슈타인(1887~1961)으로,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의 형이다. 파울은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즐겨 연주했다.
7일은 모리스 라벨의 141번째 생일이다. 라벨은 죽었지만 음악은 영화 <배트맨-다크나이트>와 <버드맨> 등 수많은 영화와 무용의 배경음악으로 살아 있다. ‘볼레로’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은 요즘도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다. 지난 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해피버스데이, 라벨’이라는 렉처 콘서트가 열렸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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