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애플은 사상 최고 순익과 기업평판지수 최고점을 경신하는 잔치를 벌였다. 며칠 뒤 <뉴욕 타임스>가 애플의 하청회사인 폭스콘의 초과 노동, 독성 물질에 의한 발병, 노동자들의 연쇄적인 자살을 고발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애플 전직 임원의 코멘트와 함께. “이 시스템은 우리에게 이득입니다. 아이폰이 오작동하는 문제라면 애플이 4년 동안 방치할까요?” 이득이었을까? 그 후로 3년 동안 애플의 기업평판지수는 꾸준히 하락했고 2015년에는 마침내 삼성에 추월당했다. 미국의 한 기업평판기관은 하청업체의 노동 환경을 둘러싼 이슈가 비켜간 덕분에 삼성이 ‘안전하고 신뢰할 만한 기업’의 이미지를 반사이득으로 얻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같은 시기 국내에서는 삼성의 초과 노동과 독성 물질에 의한 발병, 노동자의 자살에 대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거꾸로 애플이 기업평판의 반사이득을 얻었다. “좌파는 아이폰을 쓴다”는 말도 안 되는 농담이 인터넷을 떠돌았다. 물론 나는 아이폰을 쓴다.
경쟁사를 반면교사 삼았는지 2013년 말부터 삼성은 더 적극적인 평판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 전자산업 백혈병 피해 대책모임인 ‘반올림’과 대화를 시작하고 대표가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등 과거보단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지만 아직은 오락가락하는 태도다. 삼성은 협상이 시작된 지 2년도 지나지 않아 ‘반올림’을 대화에서 배제하고 피해 가족들과 개별적으로 교섭하는 자체 보상 절차를 강행했다. 삼성이 사용하는 비대칭 교섭 전략의 핵심 메시지는 “당사자와만 대화한다”가 아니라 “대화하려면 조직에 가담하지 말 것”이다.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로, 대화 당사자가 최대의 협상 기회를 가지려면 최소의 협상력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하는 모순에 빠뜨린다. 삼성은 조직 없이 파편화된 개인을 우월한 협상력으로 각개격파하는 이러한 전략으로 반세기 넘게 효과를 봤다. 대화 채널의 최소화를 곧 비용 절감으로 여겨왔기에 기업 문화에 대화라는 유전자가 거의 존재하질 않는다. 그래서 ‘반올림’은 지난 겨우내 삼성전자 본관 사옥 앞 싸늘한 길바닥에 천막을 편 채 농성을 벌였다. 오로지 대화를 요구하면서.
삼성은 전통적 협상 전략과 기업 평판 관리의 교차로에서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직 기업 평판가치의 국내적 효과를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제목을 꼭 실험해보고 싶었다. “삼성은 좋은 기업이다”. 왜냐하면 이런 문장을 평소 함부로 입 밖에 낼 수 없으니까. 심지어 최신 삼성 제품의 기술력에 깊은 감명을 받는 와중이라도 어렵다. 전쟁 같은 말다툼이 뒤따르기 십상이다. 바로 삼성이 지불하고 있는 비용이다. 세상은 최대 기업의 소비자가 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과 그 이상의 사회적 책무를 기업에 요구하는 사람들로 양분되어 있다. 그런데 후자만이 꾸준한 증가세이며 이 추세는 불변이다. 삼성의 ‘대화 회피 비용’은 점점 더 커져갈 것이다. 공동체와 대화하지 않는 기업은 소비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무의식의 수준에서 집행되는 소비윤리이기에 논쟁조차 성립하지 않는다. 좌파는 아이폰을 쓴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지만, 일말의 문학적인 진실이 담겨 있는 셈이다.
지난달 열린 한 외신기자모임의 토론회에서 삼성은 자사의 안전설비가 세계 최고 수준이며, 대한민국에서 삼성이란 기업이 갖는 지위 때문에 백혈병 사건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딱 업계 후발주자다운 답변이다. 폭스콘 노동자 자살 사태가 발생했던 당시 스티브 잡스의 창조적인 변명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니까. 물론 잡스의 변론처럼 이 모방전략도 실패할 것이다.
손아람 작가
손아람 작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