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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메탄올 ‘테러’와 파견 / 박점규

등록 2016-03-14 19:15수정 2016-03-14 20:11

월요일 아침 경기도 부천의 작은 공단. 젊은이들이 서둘러 공장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삼성 갤럭시 부품을 만들던 청년이 메탄올에 중독된 사건을 알고는 있는지, 두 달 새 네 명이 눈이 멀고 치명적 뇌손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발걸음을 옮기기 바쁘다. 하루아침에 빛을 잃은 청년들이 떠난 공단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분주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만약 국회나 법원에서 국회의원과 판사들이 연달아 실명을 당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경찰은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범인을 찾고, 정부는 테러 가능성 운운하며 대책본부를 만들고, 인공지능 알파고와 인간의 바둑 대결처럼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지 않았을까? 20대 청년들의 꿈을 앗아간 ‘메탄올 테러’ 사건은 어느새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피해자는 모두 파견직. 흔히 파견이라고 하면, 어느 회사 직원이 다른 회사로 출장 근무를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국어대사전에도 “일정한 임무를 주어 사람을 보냄”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의 파견은 다르다.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광고를 본 청년은 ○○인력이라는 파견회사에 전화를 걸고 이력서를 보낸다. 그를 채용하고 4대 보험을 들어야 하는 파견회사는 고용노동부에 등록되지 않은 ‘무허가 파견’이다. 파견업체는 그에게 일할 회사를 알려주고 수수료를 챙기면 ‘땡’. 출근한 청년은 10~20분 만에 일을 배워 실전에 투입된다. 아무도 독성물질을 알려주지 않고, 그는 메탄올에 젖어 일한다. 사장은 파견회사에서 보낸 청년이 누군지 알 필요도 없다. 제품만 뽑아내면 된다. 맘에 안 들면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면 그만이다. 삼성에 납품할 물량이 많아지면 파견회사에 사람을 더 보내달라고 전화하면 된다. 파견은 일손만 필요할 뿐 인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애완동물 대여 회사는 동물권을 침해한다고 비난받지만, 최소한 돌려받은 강아지를 돌본다. 파견회사는 파견하는 젊은이를 돌볼 이유가 없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파견노동은 1998년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졌다. 외환위기 비상사태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에 돈을 빌리면서 “노동시장 유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근로자파견법을 조기에 제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4년 뒤 빌린 돈을 조기 상환하며 외환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아이엠에프 치하’에서 제정된 파견법은 없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역대 정부는 제조업까지 파견을 확대하려 했고, 현 정부는 전문직, 뿌리산업, 55살 이상에게 파견을 전면 허용하는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일할 때 최저기준을 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은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며 중간착취를 엄격히 금지한다. 어기면 5년 이하 징역, 세다. 노동법의 ‘직접고용 원칙’에 구멍을 낸 게 파견법이다. 제조업 파견은 불법이지만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이 세 번이나 나도 사내하청(파견)을 보란 듯이 쓴다. 일시·간헐적 업무에 6개월까지 허용된 법을 악용해 상시업무 파견이 활개친다. “일하러 가실래요?”라고 꾀는 인력 ‘삐끼’가 성행하고, ‘사람장사’ 인력회사가 호황을 누린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국회의원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19대 국회는 비정규직 관련 48개 법안 중 실효성 없는 5개 법안만 통과시켰다. 메탄올 실명 사태는 파견노동이 성매매나 아동노동만큼 끔찍하다는 걸 보여줬다. 또 다른 테러를 막으려면 ‘사람장사’를 금지시켜야 한다. 20대 국회에 비정규직의 ‘적’이 아닌 ‘친구들’이 많이 당선돼 파견법을 없앴으면 좋겠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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