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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노동권 사각지대 톺아보기 / 조현경

등록 2016-03-27 18:35수정 2016-03-27 19:19

‘걸어서 배송하라는 아파트 측 입장에 저희들도 해결 방법이 없어 반송조치합니다.’ 지난해 한 아파트 단지가 택배차량의 진입을 금지시킨 후, 택배업체가 남기고 간 ‘택배 반송 스티커’다. 주민들의 ‘갑질’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며 택배업계의 열악한 노동환경까지 사회적 이슈로 조명받기도 했지만, 구조적 문제는 여전하다. 대부분의 택배 기사는 택배업체의 직원이 아니라 개인사업자다. 택배회사와 계약을 한 뒤 배송 건당 불과 700~900원 정도의 수수료를 받지만, 기름값·보험료·수리비 등 운영 비용은 택배 기사의 몫이다.

퀵서비스 노동자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퀵서비스 노동자는 고객에게 요금을 받고 그중 수수료로 23% 이상을 사업자에게 주고, 퀵프로그램 사용료로 매월 일정 비용을 지불하며, 화물 분실 파손 보험료까지 본인이 부담하는 구조다. 이들의 월평균 수입은 130만원 미만, 퇴직금·실업급여 등의 혜택도 전무하다. 퀵서비스 노동자 역시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노동권 보호의 바깥에 있는 이른바 특수고용직 노동자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란 회사로부터 지시와 감독, 통제를 받으며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지만, 법적으로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한 노동자를 말한다. 택배·퀵서비스·대리운전·화물·레미콘 기사, 학습지교사, 방송작가, 보험설계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간병노동자, 재택집배원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2015년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에서 추산한 특수고용직 노동자 수는 한국 전체 노동자의 8.9%에 이르는 230여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임금채권보장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고용노동관계법의 적용에서 배제되어 있다.

이에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노동조건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업주의 책임성 강화를 입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녹색당 모두 특수고용노동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20대 총선’ 정책 공약을 내놓았다. 2006년 비정규직 관계법 제·개정 추진 과정에서 향후 과제로 미뤄지며 방치되어 온 것을 고려할 때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기술의 발전과 서비스 산업의 확장으로 고용관계의 변형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실제 배달 주문을 중개하는 ‘배달앱’이 성장하면서 배달 서비스 구조도 변화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배달원을 직접 고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배달 대행업체의 지시를 받는 배달원이 상당수다. 10대 청소년들이 ‘신종 배달’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법률상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없으니 서면 근로계약서 작성이라는 노동법상 권리도 행사할 수 없으며, 사고가 발생하면 오롯이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무방비 상태다. 새롭게 등장할 변형된 형태의 고용관계를 고려한 법제도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한편에선,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을 스스로 개선하기 위한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있다. 서울시 설립필증 1호 협동조합도 특수고용직인 대리운전 기사들의 협동조합이었다. 한국아이티프리랜서협동조합 등 프리랜서 형태로 개별화된 노동 영역에서도 자기 보호 기제로 협동조합 설립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법제도 개선과 함께 직종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담은 실효성 있는 정책을 기대한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gobo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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