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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대북 제재 이후 / 박병수

등록 2016-03-27 18:47수정 2016-03-27 18:59

북핵위기가 불거진 건 1993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에 반발하며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다. 벌써 23년 전이다. 그럼에도 아직 위기는 진행 중이다. 유엔의 북핵 제재 결의도 이번이 여섯번째고, 한때 1994년 제네바 합의와 2005년 9·19 공동성명 등 희망도 있었다. 그러나 도로 제자리다.

달라진 게 없는 건 아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핵실험 도발은 협상 과정에서 나왔다. 2006년 10월 첫 핵실험은 6자회담 9·19 공동성명 이후 미국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제재에 대한 항의였다. 2009년 5월 2차 핵실험도 6자회담 교착 국면이 길어지자 이에 대한 불만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훨씬 공세적으로 바뀌었다.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은 협상 국면과 무관했다. 2012년 4월과 12월 잇따라 ‘은하 3호’를 발사해 어렵게 성사시킨 북-미 간 ‘2·29 합의’를 파탄시킨 뒤 유엔의 제재가 나오자, 이에 대한 반발로 핵실험을 강행했다. 올해 1월 4차 핵실험도 앞서 모란봉 악단의 갑작스런 중국 공연 취소 등 이상 조짐은 있었지만 대체로 뜻밖의 도발로 받아들여졌다.

제재 국면에서도 낯선 장면이 보인다. 이번처럼 남한이 개성공단 중단 등 남북관계의 모든 것을 제재에 다 걸고 나선 전례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모 아니면 도’식 이분법적 사고 때문이겠지만, 여하튼 정부의 ‘올인’은 역대 최강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가 나오는 데도 나름 구실을 한 걸로 보인다. 여기에 중국까지 제재 결의안의 성실한 이행을 다짐하고 있으니, 대북 제재 포위망은 전례 없이 단단해 보인다. 북한의 대응도 유별나다. 소형화 핵탄두 모형 공개, 재진입 실험 공개, 고체연료 로켓 실험 등 대량파괴무기 기술 과시가 어느 때보다 노골적이다. 북핵 국면이 단순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더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양상들이 보태지면서 위기가 깊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번 대북 제재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알려면 아마 몇 달 지나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 몇 달 뒤의 제재국면 이후일 것이다. 박 대통령이 2월16일 국회 연설에서 “이제는 북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근본적 해답을 찾아야 한다”며 체제 붕괴를 거론한 거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지난 24일 ‘한불 리더스 포럼’ 기조연설에서 “북한 핵과 인권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이라고 강조한 걸 보면, 정부는 북한 체제 붕괴를 염두에 두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구상이 먹혀들까. 여전히 대북 제재 효과를 좌지우지하는 중국은 줄곧 비핵화, 안정, 협상 중 어느 것 하나 빠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제재는 협상으로 가는 징검다리라는 인식이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지난 22일 독일 베를린 헤르티 공공정책학교에서 “북한 붕괴는 우리의 전략이 아니다”라며 “핵문제를 둘러싼 신뢰할 만한 협상 과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정부와 달리, 제재국면 이후를 생각하는 것이다.

박병수 선임기자
박병수 선임기자
그럼에도 정부가 압박 일변도만 고집한다면, 제재국면 이후의 한반도 정세는 미·중 등 강대국이 주도할 공산이 크다. 남한이 독자적으로 북한의 양보를 얻어내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한반도 주도권을 발휘하려면, 이제라도 막연한 ‘북한붕괴론’에서 벗어나 제재국면 이후를 상정한 현실적인 ‘큰 그림’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그림으로 미·중의 협조를 설득해야 한다. 그 그림에는 당연히 대화와 협상이 배제될 이유가 없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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