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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캐나다 용기를 마셔라 / 김우재

등록 2016-03-28 19:56수정 2016-03-28 20:09

각 당의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 낯익은 과학자들의 이름이 보인다. 항상 있었던 일이라 색다를 것도 없다. 오히려 재미있다. 비례대표 2번을 차지한 75살의 정당 대표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보고 수학교육과 교수를 비례대표 1번에 앉혔다고 한다. 언제쯤 그 정당이 정책으로 국민에게 다가설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국민의당 안정권에도 과학자의 이름이 보인다. 안철수의 사람들이라고 한다. 온갖 공천 잡음으로 뉴스가 도배되는 와중에 과학자들의 공천을 반가워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런 방식의 과학기술계 우대는 낡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과학기술계 인사들이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갔지만, 과학기술정책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국회에 과학기술자의 수가 적어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캐나다 보수정부 10년은 최악이었다. 그 잃어버린 10년간 경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특히 과학자들은 보수정부의 악랄한 정책 덕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왔다. 많은 실험실이 도산했고, 수많은 박사학위자들이 거리로 쫓겨났으며, 연구비가 모자라는 탓에 유학생들은 대학원 문턱 안으로 들어설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다. 캐나다 과학자들이라고 더 큰 힘을 가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정부가 가장 큰 연구비를 집행하는 기관이며, 과학자들은 정부의 눈치를 본다. 하지만 이들은 고양이 앞에 쥐처럼 수동적이지 않다.

지난달 우연히 트위터에서 캐나다 맥길대학의 또래 교수가 정부를 상대로 공개서한을 준비 중이라는 걸 알았다. 그는 젊은 교수들과 함께 신진연구자들의 연구비 절충안을 주장하고 있었는데, 보수정부가 캐나다의 연구비 체계를 완전히 엎어놓은 데 분노하고 있었다. 보수정부는 경력이 아직 미비한 신진연구자들을 경력연구자들과 동등하게 경쟁시키는 무모한 정책으로 젊은 연구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질의서는 왜 그 정책이 잘못된 것인지 조목조목 짚어냈다. 함께 서명하기로 결심하고, 학과장에게도 이메일을 보내 모두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학과장은 젊은 연구자들을 응원한다는 말과 함께 모두에게 공개서한을 알렸고, 더 많은 젊은 연구자들이 서명에 동참하기로 다짐했다.

한국과 이곳이 다른 점은 하나다. 그것은 국회에 과학자가 있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 왜 과학기술자들은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할까. 도대체 무엇이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이어야 할 과학기술자들의 입을 막고 있을까. 이곳의 과학기술자들은 잘못된 것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이 정부일지라도 달라지지 않는다. 진실을 말하고, 왜곡을 교정하는 문제에 대해 과학자들은 침묵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용기는 반드시 울림으로 공명하며, 어떤 식으로든 반향을 부른다.

글을 쓰는 바로 오늘, 캐나다 자유당 정부는 연구비 인상안을 비롯해, 보수당 정부에서 취소되었던 대부분의 계획들을 재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우리의 목소리가 영향을 미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몇 가지 교훈은 있다. 그것은 바로 과학자 한 명이 국회에 들어가는 일로 정책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과, 정권을 바꾸는 작업이 과학을 건강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은 최근 칼럼에서 긴 안목의 정책을 펼치는 일이 관료들의 알파고 따라하기 유행보다 중요하다고 말하고 그것을 프랑스의 엉덩이를 훔치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마찬가지다. 캐나다의 용기를 마셔야 한다. 그 용기가 젊은이들에게서 나온다는 사실과, 그 용기를 조직화하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과학자연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제 그럴 때가 되었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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