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은 스크린 속에서 여성 비율이 상승세를 보여준 해다.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학의 ‘티브이와 영화에서의 여성 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매출 순위로 100편의 영화 중에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 22%였다. ‘셀룰로이드 천장’은 여전하지만 2014년에 비하면 무려 10%포인트 상승했으며 지금까지 조사가 시작된 이후 드물게 여성 주인공이 20%를 넘었다. 작년에 본 영화들을 얼핏 떠올려봐도 스크린 속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눈에 띄는 경우가 많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엑스 마키나>, <신데렐라> 등. 겨울에 개봉하여 올 상반기까지 상영이 이어진 <대니쉬걸>, <캐롤> 그리고 <서프러제트>는 ‘매출’ 면에서 100위 안에 들지는 못했지만 내게는 2015년의 영화목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 작품들이다. 그야말로 스크린 속에서 ‘자궁냄새’를 접했다.
자궁냄새. 흥미로운 표현이다. 한 가수가 여성 음악의 특징을 표현하기 위해 사석에서 뱉은 말이 폭로되어 공식적 사과(변명)가 이어졌다. ‘고상한’ 글을 쓰고 있었는데 이 ‘자궁냄새’라는 표현을 접하고 난 뒤 도무지 집중이 안 되었다. 여성=자궁, 이렇게 여기는 공식이 새롭지는 않다. 그런데 음악을 얘기하면서 왜 굳이 ‘냄새’라는 언어를 사용했을까.
후각은 다른 감각에 비해 더욱 예민하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방해하는 요소가 될 때도 있다. 여수 기름유출 사고 현장에서 윤진숙 전 해수부 장관이 손으로 코를 막고 얼굴을 찡그린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은 피해를 입은 주민들과 정부 담당자 사이에 벽이 있음을 알려주는 강력한 이미지였다. 냄새나는 대상과 냄새를 맡는 입장으로 마주하고 있음을 인식할 때, 그 ‘냄새나는 대상’은 이미 존중받지 못함을 알게 된다.
영화 <추격자>의 연쇄살인범은 여자 형사에게 모멸감을 주기 위해 “생리하시나 봐요. 냄새가 비린 게”라고 말한다. 흔히 어떤 대상을 비하하거나 모욕을 느끼게 하려고 ‘냄새’를 언급한다. ‘가난의 냄새’처럼. 비하하고 싶지 않은 대상에게는 후각적 표현을 잘 끌어오지도 않고 ‘냄새’라는 말보다 ‘향기’라는 언어를 선택한다. 냄새는 불결함, 생명 없는 상태를 떠올리게 할 때가 많다. 살아있는 꽃의 냄새는 꽃냄새가 아니라 꽃향기지만 썩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냄새가 된다. 인간이 가장 활발하게 냄새를 만드는 순간은 바로 죽은 이후다. 냄새란 때로 정적이고 수동적인 대상의 가장 강렬한 존재감이다.
여성의 다양한 표현과 다양한 모습의 재현은 기존의 체제를 위협한다. 생각을 무시하고 여성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는 흔한 방식이 단지 ‘자궁’으로 여기는 것이다. 돌아다니고 말하는 인간이 아니라 그냥 자궁! 생각 없는 자궁은 남성의 시각에서 가장 안전하다. 그곳은 힘들고 외로울 때 돌아갈 수 있는 ‘장소’로 의미부여할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나를 가두는 공포로 탈바꿈시켜 억압할 수도 있다. ‘이빨 달린 질’은 오래된 신화다.
아직도 자궁의 이야기는 부족하다. 수많은 딸들이 자궁에서 사라졌다. 가난한 여성들은 ‘대리모’라는 이름으로 인권침해를 견디며 자궁거래에 참여한다. 내가 충격적으로 기억하는 어떤 자궁의 이야기도 있다. 일제시대에 포르말린 용액에 담겼으며 그 후 국과수에서 계속 보관하던 조선 여성의 생식기(2010년 ‘폐기’되었다), 19세기에 유럽으로 팔려와 사망 후에도 1970년대까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사라 바트만의 생식기. 자궁은 ‘냄새’보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내 방, 짙푸른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 <아이리스> 덕분에 자궁냄새가 가득하다.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