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코스트너가 주연을 맡은 영화 <스윙보트>(2008년)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유권자가 나온다. 중년 남자 ‘버드’는 미국 대통령 선거일에 투표장에 가지 않았는데, 딸이 몰래 투표장에 들어가 아버지 대신 투표를 한다. 그 순간 공교롭게도 투표기의 콘센트가 청소부의 빗자루에 걸려 빠지는 바람에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킨다. 나중에 투표 결과를 집계했더니 공화당·민주당 후보 둘 다 동점으로 나온다.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버드의 표 한 장이 차기 미국 대통령을 좌우하는 캐스팅보트가 돼, 열흘 뒤 버드 한 명을 상대로 재선거가 실시된다.
버드의 표를 얻으려는 양당 대통령 후보의 환대도 환대이지만, 그 이전에 자기 표 한 장의 영향력을 이렇게까지 절감하면서 행사하는 유권자가 있을까. 언론은 버드의 손에 ‘자유세계의 미래’가 달렸다고 보도하면서, 버드의 집 앞에 장사진을 친다. 한 표의 소중함을 강조하기 위한 우화적인 설정이지만, 실제로 유권자들은 버드처럼 내 표가 당락을 가른다는 마음으로, 내 투표 행위의 의미를 되새기며 투표할 거다. 그래서 영화 속 버드에게 감정이입하기도 쉽다.
그런데 얼마 남지 않은 20대 총선에서는 버드에게 감정이입하기 힘든 유권자들이 많을 것 같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야당 지지층과 무당층 유권자의 65.7%가 야권 후보 단일화를 찬성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가 야당 후보가 단일화되기를 바란다? ‘어떤 야당 후보가 돼도 좋다, 그보다 새누리당 후보가 안 되기를 바란다’는 말 아닌가. 그러니까 누구를 지지하기보다 누구를 심판하기 위해 투표하겠다는 ‘네거티브’ 중에서도 ‘적극적인 네거티브’인 거다.
누굴 안 되게 하려는 ‘네거티브’가 누굴 되게 하려는 ‘포지티브’보다 안 좋아 보이는 건 두말할 나위 없지만, 앞의 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이 그렇게 싫다는 이 ‘네거티브’ 유권자가 전체 유권자의 35.4%에 이른다. 이쯤 되면 ‘네거티브’와 ‘포지티브’의 비교는 무의미해 보인다. 또 어차피 선거는 ‘차악’을 뽑는 일이라는 말도 있다. 룰을 지킨다면, ‘누가 좋아서’가 아니라 ‘누가 싫어서’ 하는 투표라고 해서 결코 나쁜 게 아닐 거다.
전부터 경험해온 일이지만 ‘누가 싫어서’ 하는 투표의 최대 걸림돌은 야권 후보의 난립이다. 나는 어떤 야권 후보라도 좋은데 야권 후보가 여럿이 나와서 나와 같은 이들의 표를 갈라 먹는 바람에 내가 싫어하는 후보가 당선됐다? 지더라도 뭔가 개운하지 않고 투표했다는 의미도 보람도 반감될 거다.
투표를 코앞에 둔 지금 야권 후보가 단일화하면 당선되고 아니면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으로 조사되는 곳이 수십 곳이다. 하지만 야당끼리 정책과 노선이 선명하게 다른 것도 아니고, 모두 ‘새누리당 심판’을 말하고 있는데도 단일화가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들 지역구의, 앞에 말한 ‘네거티브’ 유권자들에게 투표는, <스윙보트>의 버드에게처럼 세상과 역사에 확실한 영향을 끼치는 실천적 행동이기보다, 결과에 상관없이 자기의 소신을 표현하는 실존적 행위로 다가오고 있을 거다. 투표의 보편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애써 고안한 <스윙보트>의 설정도 안 통할 만큼, ‘누가 싫어서’ 하는 투표는 한국 정치의 독특한 변수가 됐다.
남은 며칠 동안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와, 이에 맞서 ‘단일화는 야합’이라는 여당 쪽 비난이 드세질 것 같다. 답답한 일이지만, 그 며칠 동안 세상과 역사에 확실한 영향을 끼칠 캐스팅보트를 쥔 ‘버드’는 유권자가 아니라 야권 후보들인 듯하다.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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