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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이기적 투표 / 손아람

등록 2016-04-06 19:30수정 2016-04-06 22:42

가정법이 범람하고 진단은 공학에 기댄다. 선거철에 느린 생각의 자리는 없다. 선거가 공학으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투표 자체가 산술적인 의사 결정 제도이므로. 그런데 정치공학은 정말로 공학적인가? 표심을 계량한다는 전략들의 효용은 계량될 수 있는가?

수학자 콩도르세는 다수 선택지를 둔 투표에서 이행성에 어긋나는 역설이 나타날 수 있음을 발견했다. A보다 B가, B보다 C가 선호되는 경우에도 A는 C보다 선호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애로는 어떻게 보완하여도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는 투표는 근본적으로 이 역설을 피할 수 없음을 증명하여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런데 정치적 스펙트럼을 무시하고 표의 가치를 숫자로만 평가한다면 이 역설은 전혀 역설이 아니다. 광범한 의사 중첩 대역을 가지는 중도 성향 유권자를 공략하는 게 최선이다. 이를 중위투표자 정리라고 부른다. 많은 다당제 민주 사회에서 중도 성향 양당 구도가 관찰되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이 선거 체제를 보수적으로 정비하는 데도 중위투표 이론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정당지지율이 크게 상승했으므로 최선의 결정처럼 보인다. 그런데 중위투표 이론을 따르자면 애초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의 전략부터 최선이 아니었다. 일대일 가상대결에서 유권자들은 안철수보다는 문재인을, 문재인보다는 박근혜를 선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보다는 안철수를 선호했다. 전형적인 콩도르세 역설이다. 야권 성향 유권자의 상당수가 본선에서 ‘이길 수 있는’ 후보 단일화를 주장했다. 정치인 안철수의 역량을 평가할 만한 충분한 관찰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그러나 문재인 캠프는 중위표를 고려한 단일화를 거부했고, 결과적으로 패배했다. 비난할 수 있을까? 실은 유권자 스스로 자신의 표가 통계를 덧대는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믿지 않는가?

한편 제18대 대선에서 진보 진영은 김순자와 김소연 두 후보를 냈고 도합 0.2%를 득표했다. 두 후보와 연대해왔던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마저 공식적으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선거 다음날 나는 인터뷰를 위해 김순자 후보를 만났다. 결과를 보니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김 후보는 담담하게 “나에게 투표했나요?”라고 반문했다. 할 말이 없었다. 진보정당들은 오랜 세월 중위표 역설의 희생양이었다. 하지만 꼭 거대 야당에만 표를 침탈당한 것은 아니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심상정과 노회찬으로 대표하는 평등파는 상대적으로 높은 지명도와 선호도를 확보하고도 당내 양적 패권을 자주파에게 내주었고, 마침내 결별하여 정의당을 창당했다. 현재 정의당의 지지율은 10%를 육박한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이 역시 다른 진보정당들의 표층을 부분적으로 침식한 결과다.

손아람 작가
손아람 작가
이상적으로 공정하며 효과적인 투표 전략은 알려져 있지 않다. 사회과학은 여태껏 그런 투표 전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발견했다. 행사된 모든 표는 잠재적으로 유권자 의사를 배반하는 사표이며, 그래서 거꾸로 사표는 존재하지 않는다. 투표하지 않는 것만이 유일한 사표 행위다. 투표 역설 이론들 역시 최소한 투표만큼은 가정하고 있으니까. <괴짜경제학>의 저자인 스티븐 레빗의 연구에 따르면, 결과를 전망하는 관성이 선거를 지배하기에 선거비용이 득표율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반면 2010년 <뉴욕 타임스>는 미국의 표당 선거비용이 금권선거가 횡행한 1996년 타이 선거의 매표 비용만큼 치솟았다고 보도했다. 이기적 투표만이 표의 가치를 높인다. 투표권을 사고팔 수 없는 사회의 정당이라면 이기적 유권자를 정책으로 유혹할 수밖에.

손아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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