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이 무렵이었다.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스웨덴 금속노조 위원장 스테판 뢰벤을 만났다. 넙데데한 얼굴에 푸근한 인상이 꼭 동네 아저씨였다. 기계 제조회사의 용접공 출신. 20대에 노동운동을 시작해 금속노조 교섭위원과 조직실장을 거쳤고, 화학, 섬유노조와 합쳐 조합원이 44만명으로 늘어난 통합금속노조 초대 위원장이 됐다. 뢰벤은 지금 스웨덴 총리다.
그가 스웨덴의 노동 현실을 들려줬다. 1천명 이상 기업은 노조 대표 3명이 이사회에 참가해 회사 경영을 함께 결정한다. 일자리를 잃으면 300일간 평균임금의 80%를 받고, 그 이후 300일 동안 취업을 소개받으며 실업급여를 받는다. 비정규직은 15% 정도지만 정규직과 차별이 거의 없다. 3개월, 6개월씩 ‘쪼개기 계약’으로 일해도, 5년 안에 18개월 이상 근무했으면 정규직이 되는 고용안정법을 만들었다. ‘강성노조’ 때문에 망하기는커녕 스웨덴의 고용률(79.4%)은 유럽연합 중 최고로 한국(58.8%)보다 20%나 높다. 노조 조직률(67.5%)은 한국(10.3%)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 비결을 묻자 강력한 산별노조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꼽았다.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이 50%에 이르고 현대차에 1만명의 사내하청이 일한다는 얘기를 들은 그는 그렇게 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을 느끼면서 어떻게 회사에 충실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강력한 노조와 연대할 수 있는 당이 없었다면 우리도 한국과 같은 상황이 됐을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내일이 밝아집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의 약속이었다. 2016년 비정규직은 868만명. 특수고용(230만)과 사내하청을 뺀 숫자다. 평균 월급은 148만원으로 정규직의 절반, 4대 보험 가입률은 30%. 한 해에 정규직 100만, 비정규직 100만명이 실직하는데 저성과자 해고 제도까지 도입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메탄올 중독으로 파견직 청년들이 연쇄 실명한 경기도 부천을 찾아 20대 국회에서 몸싸움을 해서라도 노동개혁법을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을 위해 폭력도 불사하겠다고 큰소리치는, 무서운 게 없는 사람들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는 “노조가 사회적 문제에 집착하면 근로자 권익보호가 소외된다”며 민주노총을 훈계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법을 만든 주범들이 앞다퉈 ‘호남정신’을 부르짖는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내일은 더 깊은 수렁이다.
해고요건을 완화하고 노동시간을 늘리는 정부에 맞서 연일 총파업을 벌여 에펠탑까지 문을 닫게 한 프랑스, 산별노조가 경영에 참여하고 용접공이 총리가 되는 스웨덴은 먼 나라 이야기일까? 연대정신을 잃어버린 ‘무늬만 산별노조’와 멀어져버린 노동자 정치세력화. 하지만 아직 희망을 포기할 때는 아니다.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노조를 만들다 해고·구속되고, 평생을 사회적 약자의 친구로 살아온 거리의 변호사 권영국. 대법원이 쌍용차 정리해고가 합법이라고 판결하자 그는 사법정의에 대한 마지막 미련을 버리며 말했다. “정치로 세상을 바꾸지 않는 한 해고된 노동자와 가족의 고통을, 차별받는 비정규직의 한숨을, 세월호 유가족들의 진실에 대한 갈망을 풀 수 없습니다.” 정권의 심장부 경북 경주에서 용산참사 주범과 싸우는 권영국,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의 녹색당 이계삼, 세월호 추모행진 ‘가만히 있으라’의 노동당 용혜인, 그리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우는 수많은 ‘용접공’들이 우리 곁에 있다. 총선 이후 이들이 만들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기대한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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