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밤부터 16일 새벽까지 일본 구마모토현을 연이어 강타한 규모 6.5와 규모 7.3의 강진으로 17일 현재, 41명이 숨지고 3100여명이 부상했다. 약 1700채의 주택이 무너졌고, 20만채가 넘는 주택에 전기 공급이 끊겼다. 땅이 무너져 내리면서 도로 곳곳이 흔적을 감췄으며 차량 운행도 전면 중단됐다. 주목할 점은 이번 지진이 1995년 고베 대지진을 1.4배 능가하는 규모라는 점이다. 고베 대지진에선 사망자 6434명, 부상자 4만3792명이 발생했다. 구마모토현을 강타한 이번 지진이 횟수와 강도 면에서 더욱 위력적이었던 것을 고려할 때, 인명피해가 확연히 줄어든 것은 그 이유를 따져볼 만하다.
일본은 고베대지진을 교훈 삼아 ‘건축물의 내진 개수 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특정 건축물의 소유자나 관리자에게 내진 대책을 확보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등 지진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실제 14일 밤 규모 6.5의 강진에 상당수의 건물 외벽이나 간판이 떨어져 나갔지만, 붕괴한 가옥수는 수십채 정도였다. 문제는 16일 새벽 강타한 규모 7.3의 강진이었다. 내진설계가 철저한 일본이라 해도 연이은 강진에는 방도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번 지진의 피해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것은 인구 밀도 차이 등도 영향을 줬지만 고베대지진 이후 튼튼한 건물을 만들려는 일본 정부의 노력이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인 것으로 일본 언론들은 분석했다.
최근 한반도에서도 작은 규모의 지진 발생 빈도가 점차 잦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언뜻 아무런 대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살펴보면 지진을 대비한 법적 근거도 마련되어 있다. 현행 건축법 개정안에 따르면 3층 이상 혹은 연면적 1천 제곱미터 이상의 건축물은 반드시 내진설계를 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공공시설물에 대한 적용일 뿐 민간 소유 건축물에는 강제할 수 없는 조항이다. 실제 지난해 6월 현재 전국 건축물의 내진성능 확보 비율은 34.6%에 그쳤으며, 부산(26.3%)과 서울(26.7%)은 최하위를 기록했다. 민간 소유 건축물에 대한 내진설계 의무화를 본격화해야 할 시점이다.
근본적으로 돌이켜보면 자연재해나 안전사고 등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제도와 정책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일례로 삼풍백화점 붕괴 8개월 전엔 무려 세 차례나 안전점검을 받은 바 있다. 당시 희생자를 만들어낸 원인은 비리의 온상인 허울뿐인 안전점검과 재벌·토건·경제관료의 특권적 동맹에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누구 하나 제대로 책임지지 않았고, 그렇게 사회적으로 용인된 부실과 비리는 체계적으로 누적되어 왔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잘못을 올바로 처벌하고, 청렴한 기반 위에 안전한 사회를 건설할 기회를 수없이 놓쳐 왔다. <위험사회를 진단한다>의 저자 홍성태 교수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는 원인은 좋은 제도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비리로 인해 오작동하는 제도에 기인한다”고 진단했다. 제2의 세월호 참사의 위험은 도처에 잠재되어 있다. 성역 없는 수사로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한 이유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gobogi@hani.co.kr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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