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직후 뉴기니를 비롯한 멜라네시아 일대에는 메시아가 비행기에 선물을 싣고 온다고 믿는 부족들이 많았다. 이런 믿음을 화물숭배(cargo cult)라고 한다. 원주민들은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 활주로를 만들고 관제탑을 세웠다. 그리고 밤낮없이 하늘을 쳐다보며 비행기가 지나갈 때마다 신호를 보냈다. “여기는 관제탑. 응답하라, 오버.” 하지만 비행기는 한 대도 착륙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관제탑은 나무로 엉성하게 만든 모형에 불과하고, 원주민 관제사는 비행기의 이착륙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은 어쩌다가 화물숭배에 빠지게 된 것일까? 뉴기니에 온 백인들은 원주민을 동원하여 섬 곳곳에 비행장을 닦았다. 얼마 후 원주민들은 하늘에서 거대한 날개 달린 물체가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 안에는 라디오, 시계, 통조림 등 진기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마치 하느님이 섬사람들에게 선물을 내려주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백인들은 그 선물을 독차지하고 원주민에게는 아무것도 나누어주지 않았다. 화가 난 원주민들은 자기들도 비행장을 만들어 백인들처럼 비행기를 부르는 의식을 행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오늘날 화물숭배는 주로 비합리적이고 반과학적인 사고방식을 조롱하는 맥락에서 언급된다.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에서 종교가 무지에서 생겨난다는 증거로 화물숭배를 들었다.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먼은 ‘화물숭배 과학’(cargo cult science)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화물숭배 과학이란 겉보기에는 과학적인 절차를 따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과학이 아닌 것을 말한다. 원주민들이 아무리 그럴듯하게 관제사 흉내를 내도 비행기를 착륙시킬 수 없는 것처럼, 화물숭배 과학은 과학적인 지식을 생산할 수 없다.
하지만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화물숭배를 무지한 원주민들이 만들어낸 우스꽝스러운 믿음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화물숭배는 세계 경제에 대한 원주민 나름의 통찰을 담고 있다. 원주민들은 백인들의 화물이 어디에서 오는지 몰랐다. 그리고 자신들의 고된 노역과 백인들이 섬에서 약탈해가는 자원이 그 화물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에게도 화물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백인이 온 뒤로 훨씬 더 많이 일하면서도 더 가난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문명인을 자처하는 우리도 화물숭배에 빠져 있기는 매한가지다. 우리는 슈퍼마켓에 산더미같이 쌓인 물건들을 보면서 그 물건들이 어디서 왔는지 자문하지 않는다. 돈을 내면 원하는 것을 가져갈 수 있다고 굳게 믿을 뿐이다. 우리의 화물숭배는 경제학이라 불리는 ‘화물숭배 과학’에 의해 지탱된다. 경제학자들은 숫자로 가득한 도표를 제시하면서 자기들 말대로만 하면 모든 게 잘될 거라고 주장한다. 슈퍼마켓에는 늘 물건이 쌓여 있고 우리 주머니에는 돈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몇십년간 ‘낙수효과’에 대해 떠들었지만 우리는 점점 궁핍해질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돈을 더 풀어야 한다느니 ‘양적완화’라느니 떠들고 있는데, 지금까지 풀린 돈이 어디로 갔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그들의 말을 믿느니 원주민의 지혜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는 구슬치기를 잘해서 온 동네 구슬을 다 휩쓸어가는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놀이가 끝나면 자기가 딴 구슬의 절반을 다시 나누어주었다. 구슬을 혼자서 다 가지고 있으면 구슬치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경제에 필요한 것도 이런 지혜이다.
김현경 문화인류학자
김현경 문화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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