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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오늘의 아나벨레를 찾아서 / 강정수

등록 2016-04-20 20:28수정 2016-04-20 20:28

미국 방송 시청자가 고령화의 길을 빠르게 달리고 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미국 <시엔엔> 시청자 나이의 중간값은 61살이다. <엔비시>는 63살, <폭스 뉴스>는 67살이다. 미국 시민의 나이 중간값은 37살로, 방송 시청자와의 차이는 무려 25살이 넘는다. 1994년 엔비시, 폭스, <에이비시> 시청자 나이의 중간값은 34살이었다. 이후 20여년을 미국 방송사들과 시청자들은 함께 나이 들며 동고동락해왔지만, 젊은이들은 방송에서 등을 돌린 것이다. 한국의 방송 시청자 또는 신문 독자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방송과 언론의 디지털 혁신은 젊은 소비자를 향해 있다. 뉴욕 타임스는 젊은층에도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뉴욕 타임스를 자신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언론이라고 평가하지는 않는다. 뉴욕 타임스는 스스로를 “(나이트)클럽에 있는 할아버지”에 비유하며, 젊은 독자에게서 “중요도(또는 관련성)”(relevance)를 잃었다고 자책하고 있다.

미디어가 소비자와 함께 나이를 먹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1938년 창간한 스위스의 여성지 <아나벨레>(Annabelle)는 스위스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싸웠다. 아나벨레는 20세기 초 스위스에서 가장 흔한 젊은 여성의 이름으로, <아나벨레>는 1971년 여성에게 투표권이 허용되기까지 자신의 독자인 많은 젊은 아나벨레들과 함께 싸우고 웃고 슬퍼했다. 1970년대 아나벨레에게 담배의 맛을 가르치기도 했고, 아나벨레가 결혼할 땐 가정과 일,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이야기하고 또 후엔 이혼 결정을 돕기도 했다. 1990년대 아나벨레는 자신의 딸이 살아갈 세상을 향해 여성할당제를 주장했다. 이것이 아나벨레라는 ‘페르소나’의 삶에 깊게 관여한 <아나벨레>의 역사이며, 미디어가 소비자로부터 중요도 또는 관련성을 얻을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을 보여준다.

2011년 창간한 마이크닷컴(MIC.com)은 26살의 관점에서 모든 뉴스를 만든다. 20년 이후 독자 중 누군가는 정치인이 될 것이다. 마이크닷컴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청년을 만나 평화 전략을 논쟁하며, 페미니즘 운동을 위해 1년 동안 배우 활동을 멀리한 에마 왓슨에 열광하며, 동성애를 커밍아웃한 우크라이나 20살 청년의 삶에서 위대함을 발견한다. 마이크닷컴은 <아나벨레>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대학 시절의 동반자는 1988년 창간한 <한겨레>였다. 무한반복해 읽었던 영화평은 영화 하면 동시상영 극장을 벗어나지 못했던 나를 구출하였고, 서평은 시인 황지우와 이성복을 만나게 해주었다.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개혁을 둘러싼 페레스트로이카 논쟁은 친구들과 침 튀기며 떠들 수 있는 지적 허세를 선물했다. 대학 마지막 해였던 1994년에는 <한겨레21>을 만났다. 술 취해서 귀가한 밤, 안주머니에 말아 넣었던 한겨레21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 버스정류장으로, 들렀던 술집들로 애타게 찾아 헤매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강정수 (사)오픈넷 이사
강정수 (사)오픈넷 이사
내 20대의 성장판 한겨레와 한겨레21은 지금은 누구의 삶에 관여하고 있을까? 5천만 시민 모두를 위한다며 과한 욕심에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의 한겨레는 50대를 향하고 있는, 60대를 준비하는 독자를 중심에 놓고 돌봐야 할 것이다. 잃어버린 젊은 독자를 되찾고 싶어 ‘헬조선’을 심층분석한다 해도 청년이 한겨레로 마음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20대와 같이 느끼고 생각하고 20대를 위해 함께 싸울 수 있는 새로운 이름의 미디어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한다. 미디어의 미래는 오늘의 아나벨레를 찾는 데 있다.

강정수 (사)오픈넷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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