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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탈북자의 ‘자리’ / 김성경

등록 2016-04-25 19:06

누군가를 특정 이름으로만 호명하는 것은 폭력적이다. 선명한 이름은 다름이나 차이를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탈북자’, 이들은 분단체제 내에서 한국 사회의 우월함의 징표이자, 동시에 북한을 육화한 존재이다. 북한을 ‘탈출’했기 때문에 받아들여졌고, 동시에 모국인 북한과 관련된 것을 부정해야만 이곳에서의 그 알량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오늘도 ‘종북 척결’을 외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한다. 한국 사회가 허용하는 ‘탈북자’의 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사람’들은 북한 출신임을 숨기고 살아가거나, 아니면 전형적인 ‘탈북자’로 변신해야만 한다. 다양한 얼굴의 북한 출신자는 허용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자리’는 북한을 ‘탈출’한 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말한 한 탈북 청년에게 비난이 빗발친 일이 있었다. 인격모독을 넘어 인격살인이 자행되는 사이버 세계에서 고분고분하지 않은 탈북자는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런 문제에 연루되지 않으려면 전형적인 ‘탈북자’의 상에 충실하면 된다. <수용소 14호 탈출>의 주인공인 신동혁은 바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경우다. 북한이 얼마나 극악한 곳인지 증명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자리였다. 하지만 그의 증언의 사실 여부가 문제시되자 그의 편에 섰던 많은 이들이 그에게 등을 돌렸다. 진보 진영에서조차 그가 왜 그렇게 자신의 경험을 부풀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다. 증언할 수 없는 그는 이제 쓸모없어 버려진다. ‘사람’ 신동혁에 대한 고민과 성찰은 그 어느 곳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비슷한 사례가 또다시 되풀이된다. 이번에는 ‘시위 알바’를 하는 탈북자 단체가 문제다. 어버이연합으로의 이상한 돈의 흐름이 포착되고, 그것의 일부가 탈북자 단체로 흘러들어갔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적 의견을 개진하는 시위에서 다수의 탈북자 알바생이 동원되었다는 사실은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한국 사회는 ‘돈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동원된 대상이 ‘탈북자’라는 사실에 더 흥분하고 있다. 물론 그 이유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르다. 한편에서는 그들이 증명해온 한국 사회의 우월성에 혹여나 생채기가 날까 전전긍긍하는 것이고, 또 다른 쪽에서는 ‘거짓말쟁이’ 탈북자를 앞세운 상대방 진영이 도덕적 치명상을 입은 것에 기뻐한다. 그나마 조금 더 성찰적인 몇몇은 아무것도 모르는 탈북자가 ‘나쁜’ 세력에게 ‘이용당했다’고 말한다. 경제적 약자인 그들에게 선택권이 없었다는 동정론도 있다. 이러한 연민의 시선 또한 탈북자를 동등한 ‘사람’이 아닌 ‘사람이 되지 못한 자’로 만들어버린다. 어느 쪽이든 탈북자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이들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치열한 고민은 없다. 다만 자신들의 정치 싸움에서 이번 문제의 득실만을 따질 뿐이다.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생존이 최우선인 소수자는 자신들의 위치와 한계를 동물적으로 안다. 과연 탈북자들이 ‘돈’만을 위해서 시위에 참여한 것일까. 혹여나 자신들에게 허용된 ‘자리’가 ‘반북’과 ‘종북 척결’뿐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감각했던 것은 아닐까. 이들이 잠시나마 자신들의 존재적 가치를 확인한 그 장소가 보수단체가 돈을 뿌려 조직한 시위였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함축한다. 이들을 다른 이름과 자리로 초대하지 못한 한국 사회 모두가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들에게 ‘곁’을 내주지 못한 우리가 그들을 알바 시위꾼으로 만든 공모자들이다.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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