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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기업 구조조정의 성공 조건 / 박현

등록 2016-05-01 19:17수정 2016-05-01 19:17




1997년 12월 경제부 인사 발령을 받았다. 재정경제원이 국제통화기금(IMF)에 치욕적인 구제금융을 신청한 직후였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응축돼온 한국 경제의 온갖 모순이 폭발하고 있었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과 과잉 투자, 총수의 황제경영, 법적 실체가 없는 그룹 기획조정실의 컨트롤타워 역할, 관치금융…. 한국 경제의 실체를 엿볼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였다.

우리 경제가 환골탈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 후진적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미국식 자본주의 시스템을 근간으로 하는 주주 자본주의가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로 불리며 유행을 탔다. 정부는 사외이사제 도입 등 제도 정비에, 시민단체들은 소액주주운동에 나섰다. 논란이 있었지만, 재벌 총수가 법 위에 군림하고, 대기업의 중소기업 ‘약탈’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이런 움직임은 우리 경제를 한 단계 전진시키기 위한 과정의 일부임은 분명했다.

20년이 거의 지난 2016년 4월 다시 기업 구조조정이 화두가 됐다.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 계열 조선·해운사들의 경영상황을 들춰보니 그동안 우리 사회의 개혁 노력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었는지 묻게 된다.

물론 외환위기 때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지금 위기의 규모는 크지 않다. 외환위기 때는 공적자금이 무려 167조원이나 들어갔다. 지금은 중국발 경제위기의 파고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으나, 5대 취약업종 중 조선·해운업이 특히 문제가 된다.

그러나 면밀히 들여다보면 문제가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우선 현대상선·한진해운 위기에서 보듯, 그동안의 재벌 개혁은 헛구호였음이 드러났다. 두 회사 모두 준비 안 된 총수 부인들이 남편들의 뒤를 이었는데, 재벌의 세습경영은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외이사들은 ‘거수기’로 불릴 만큼 재벌 총수 견제에 무력하다.

여기에다 이번엔 개혁의 대상뿐만 아니라 주체도 신뢰하기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때는 사상 첫 여야 정권교체로 개혁의 주체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지금 구조조정의 주체가 돼야 할 국책은행(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은 그 스스로가 부실 덩어리가 돼버렸다. 이들이 인수한 수백개의 부실기업들은 국책은행과 정부기관, 정치권 낙하산 인사들의 자리보전용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들 인사들은 해당 기업을 구조조정하기는커녕 연명시키는 데 급급했다. 이들은 국민 세금으로 ‘부실기업 잔치’를 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현 경제 에디터
박현 경제 에디터
이번 구조조정이 성공하려면 최소한 세가지가 이뤄져야 한다. 첫째, 구조조정의 주체를 먼저 바로 세워야 한다. 국책은행으로 대표되는 채권단,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정부가 지금까지의 잘못을 반성하고 새로운 자세를 보여야 한다. 핵심적인 것이 전문성이 결여된 낙하산 인사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해당 기업과 업종을 제대로 아는 전문경영인들이 전면에 나서게 해야 한다. 둘째, 느슨해진 재벌 개혁의 고삐를 다시 죄어야 한다. 재벌 총수 가족의 세습경영을 종식시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도 20세기 초·중반 상속증여세율을 77%까지 인상함으로써 세습경영 체제를 전문경영인 체제로 유도했다. 또 기업 경영이 법치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도록 법 집행을 엄정하게 해야 한다. 셋째,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날 노동자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 경제 규모도 이제 선진국에 접어든 만큼 고용대책도 유럽 등 선진국 수준에 맞게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여야정, 그리고 노사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박현 경제 에디터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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