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잉원 총통의 대만 신정부가 느끼는 ‘중국 딜레마’는 곧 북한의 ‘중국 딜레마’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남한의 딜레마가 될 수도 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 취임식을 앞두고 대만을 방문해 학자들을 만났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만 집권 민주진보당 싱크탱크인 ‘신대만국책연구소’(TBT)와 대만 국방대학교 내 전략연구소를 찾아 타이베이를 방문한 것은 새 총통의 취임식을 일주일 앞둔 5월13일이었다. ‘남북한 무기체계 변화가 한반도 냉전 및 분단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하는 동국대 연구팀과 함께한 자리였다.
지난 20일 차이잉원 새 총통이 취임사에서 92공식(‘하나의 중국’을 원칙으로 하지만 표기는 각각 다르게 한다)을 언급하지 않아 중국 쪽에서 강하게 항의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필자는 대만 싱크탱크 방문 때 이미 그 가능성을 충분히 느꼈다. 민진당 계열 학자들과 만났을 때 그들은 ‘거대한 중국이 작은 대만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강하게 내비쳤다.
13억5천만의 중국과 2400만의 대만은 이미 국력 경쟁을 얘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상태다. 대만 기업들의 경우 중국에는 적극 투자하면서도, 오히려 자국 내 투자에는 소홀하다. 시장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미 12%를 기록한 대만 청년 실업률은 앞으로 더욱 높아질 수 있다. 어쩌면 앞으로는 대만 경제 자체가 중국 없이는 존재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대만 학자들은 “양안관계의 평화를 유지하는 정책은 계속 펴나가겠지만, 경제는 동남아 시장을 개척하는 ‘신남향 정책’을 적극 추진하는 등 대중국 의존도를 낮춰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평화 유지, 경제성장,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성 유지’라는 어려운 고차방정식을 앞에 두고 끙끙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형국이다. 한마디로 딜레마적 상황이다.
인구 2500만인 북한은 어떨까. 아마도 대만보다 더 깊은 ‘중국 딜레마’에 빠져 있을 것이다. 각종 유엔 제재 등으로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는 너무나 높아졌고, 앞으로도 강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북한의 대중국 무역의존도는 2014년에 이미 90%를 넘었다.
더욱이 대만은 중국에 투자하는 입장이지만, 북한은 경제성장을 위해 중국의 투자를 받아야 하는 ‘을’의 입장이다. 그러니 북한 지도부의 위기감도 대만 신정부보다 더 클 것이다. 북한에 중국은 현재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지만, 미래에는 독립성을 좌지우지할 영향력을 지닌 존재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인구 5천만인 남한은 좀 다르다. 인구는 북한이나 대만의 2배이고, 상당한 수준의 기술력과 자본력도 갖추고 있다. 그렇더라도 ‘중국 딜레마’가 없는 것이 아니다.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빠르게 줄어들거나 심지어 역전되면서 폐업 등 위기에 빠진 업종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징후’이다.
그러나 남북한은 대만과는 다르다. 주된 차이점은 대만과 달리 남북한은 ‘중국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남북이 경제 협력을 강화해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 그것이다. 인구 7500만의 경제가 되면 중국의 영향력에 그렇게 쉽사리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남북의 지도자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남북 지도자 모두 현재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런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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