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의 기준으로도 찰스 다윈은 전문적인 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박사학위도, 소속 대학도 없는 아마추어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의 이론이 혁명이 된 데에는 그가 평생 2000여명의 학자들과 1만4500여통의 서신교환을 통해 구축한 네트워크가 있다. 다윈은 위대한 과학자 이전에 위대한 커뮤니케이터였다. 다윈만이 아니다. 근대과학의 탄생 자체가 과학자 네트워크에 기대고 있다. 과학혁명의 시기는 과학이 제도화되던 시기와 겹치며 그 제도화의 첫 시작이 과학학회의 탄생이었기 때문이다. 17세기 초반부터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과학자들의 학회가 시작되었고 이 중 가장 성공적이었던 영국 왕립학회에서 뉴턴이 등장했다. 뉴턴이 근대과학을 이끈 것이 아니라, 왕립학회가 뉴턴이라는 거인을 등장시킨 셈이다. 근대과학의 승리는 과학자 네트워크라는 제도의 승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의 본질은 그 보편성에 있고, 보편성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재현되는 실험 결과들에 의해 지지된다. 그런 이유로 과학자들의 학회는 다른 학문과 다른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바로 자연스러운 국제적 협력관계다.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도 과학자들은 작업의 보편성 덕분에 국제적 교류에서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과학은 그 시작부터 국제적 네트워크 속에서 탄생했고 유지되어 왔다. 생명과학 분야의 네트워크를 이끄는 가장 영향력 있는 단체는 미국 뉴욕주에 위치한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다. 1890년 설립된 이곳은 유전학, 분자생물학, 암생물학에서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설 연구소 중 하나다. 하지만 정말 이곳을 유명하게 만드는 건 1년 내내 열리는 다양한 소규모 학회들이다. 세계적 학자들 수백명이 모여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밤까지 치열하게 발표하고 토론하는 활동은 정보의 교환을 넘어 엄청난 교육적 효과를 지닌다. 바로 그런 장소에서 세계적 수준의 과학이 탄생한다. 2010년, 바로 이 미팅의 아시아 지부가 중국 쑤저우에서 시작되었다. 상하이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이 휴양지에서 1년 내내 세계 최고 수준의 생명과학 학회가 개최되고 있다. 한국은 여러 측면에서 중국에 앞섰던 선취권들을 모조리 빼앗기는 중이다. 조선업의 불황은 그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과학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중국은 국가의 전폭적 지원 속에 엄청난 돈과 인력을 투입해 세계 과학을 주도하고 있다. 이제 한국 과학의 위치는 무엇이어야 할지 고민할 시기가 왔다.
인천국제공항은 그 지정학적 위치와 더불어 뛰어난 운영방식으로 국제적 허브 공항이 되었다. 송도는 실패한 도시일지 모르나, 적어도 인천공항을 인프라로 계획된 국제도시다. 미국과 중국의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는 공항에서 몇 시간 거리에 있고, 교통편도 매우 불편하다. 하지만 송도엔 그런 단점이 없다. 게다가 송도엔 외국 유명대학들의 캠퍼스가 들어서는 중이다. 이곳에 국제적 과학 교류의 중심이 될 센터를 건설해볼 여지가 있다.
언젠가 도올은 한국은 유교 복덕방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차피 한국은 강대국일 수 없고, 주변 강대국의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도덕적 순결성의 구심점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한국 유학의 길을 거기서 찾았다. 한국의 과학도 그런 운명일지 모른다. 일본과 중국이라는 강대국 속에서, 한국 과학의 길이란 과학 복덕방의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태어나 처음으로 방문한 중국에서 세계의 석학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중국 대학생들을 지켜보며 든 고민은 깊기만 하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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