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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구조조정의 대안, 사회적 고용 / 강신준

등록 2016-06-06 19:15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점차 현실화하고 있는 와중에 지난 5월20일 울산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정리해고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에서 노동조합들이 주최한 자리여서 현장 노동자의 의견과 노동계의 대응방향을 짐작할 수 있는 자리였다. 드러난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되었다. 하나는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조직한다는 것이었다. 얼핏 당연해 보이는 이들 의견을 보면서 나는 조선산업의 위기를 경고한 보고서가 나온 지 10여년이 지나도록 우리 노동운동이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까닭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우산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들 의견이 여전히 기업별 노조의 한계에 갇혀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경영진에 대한 책임추궁과 정리해고 반대는 모두 개별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위기는 개별 기업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그것은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에 조선산업의 수급불일치가 겹쳐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개별 기업은 이런 위기를 수습할 능력이 없고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지금 채권단과 정부의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 바로 그것을 대변해준다. 따라서 개별 기업의 징벌과 그것의 정리해고 재량권에 호소하는 일만으로는 실효성 있는 대안이 마련되기 어렵다. 실질적인 대안은 우산과 위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통해서만 마련할 수 있다.

노동자에게 구조조정 위기는 본질적으로 고용의 위기이고 그것의 대안은 반대나 책임추궁보다는 실질적으로 일자리를 마련하는 데에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가 기업 단위에만 존재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자본주의에서 고용은 생산관계라는 사회적 단위에서 비롯된 것이고 따라서 그것의 대응도 사회적 차원에서만 실효성을 갖는다. 개별 기업의 일자리는 기업 간 경쟁을 통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지만 자본주의 전체에서 임노동자의 고용은 항상 상수로 존재한다. 따라서 고용은 개별 기업이 아니라 사회적 단위에서만 보장될 수 있다. 10년 전 두 보고서에서 제시한 산별 단위의 직업훈련소, 숙련기구가 바로 사회적 고용시장이고, 1970년대 조선산업의 위기에서 독일 금속노조가 주력했던 정책(‘정리해고 대신 향상 훈련’ 프로그램)도 바로 이것이다.

강신준 동아대 부민캠퍼스 경제학과 교수
강신준 동아대 부민캠퍼스 경제학과 교수
따라서 지금 노동진영의 핵심과제는 초기업 교섭전선을 구축하여 정부의 구조조정 자금이 개별 기업의 채무변제에 사용되기보다(STX조선의 지원 실패를 보라!) 사회적 고용시장 건설에 사용되도록 하는 일이다. 개별 기업과 채권은행의 손실은 당연히 사적 당사자들이 부담하고 이들이 부담하지 못하면 정부가 인수하여 공적 기업으로 만들면 될 일이다. 정부의 공적 자금은 오로지 공적인 이해를 위한 것이고 가장 다수를 이루는 노동자들의 이해에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회적 고용시장은 시장 전체의 고용 축소에 대응(고용대기)하는 것은 물론 개별 기업들의 고용변동(기업 간 인력이동)에도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사실 고용문제에는 노동운동의 정체성이 걸려 있고 전노협과 민주노총이 창립선언에서 산별노조를 지향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진중공업과 쌍용자동차의 비극이 기업별 고용에만 매달린 결과였고 10년 전 보고서에 따라 우리 노동운동이 사회적 고용시장을 마련했다면 피할 수 있는 것들이었음을 떠올려야 한다. 정체성의 시험대에 선 우리 노동운동이 기업별 의식에서 벗어나 부디 계급운동의 궤도에 오르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강신준 동아대 부민캠퍼스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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