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시작된 미국 금융위기는 2008년 9월15일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그 절정을 이룬다. 금융위기로 인해 형성된 신용경색은 실물 경제에도 영향을 미쳐 미국 경제는 2008년과 2009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일시적이지만 가장 강력한 경기 침체를 경험한다.
실물 경제의 위기는 이미 침체 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던 미국 자동차 산업에 악영향을 미쳤다. 오랫동안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의 위치를 차지했던 제너럴모터스는 2005년과 2006년 각각 116억달러와 20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했고, 2007년과 2008년 손실 규모는 387억달러와 309억달러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포드와 크라이슬러의 사정 또한 심각했다. 위기의 일차 원인은 높은 유가에도 불구하고 대형 스포츠실용차(SUV)와 픽업트럭을 고집한 경영진의 잘못된 모델 전략이었다. 여기에 미국 자동차 시장의 버팀목이었던 가계대출이 무너지면서 이들 ‘빅3’는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2006년 기준 미국 승용차 판매액 중 24퍼센트는 주택담보 대출에 의존했다. ‘비우량 주택담보 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위기’는 자동차 수요 급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빅3 종사자, 부품업체 종사자, 판매 딜러 등 당시 자동차 산업 종사자는 약 160만명 수준이었으며 전후 산업까지 고려하면 종사자 규모는 약 310만명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미국 정치권은 자동차 산업의 위기 해법을 놓고 논쟁을 시작했고 그 와중에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는 미국 4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2009년 2월 오바마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 연설을 통해 “우리는 자동차 기업의 잘못된 경영을 보호해서도 안 되며 보호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자동차 산업이 다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자동차 산업을 재편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역설한다. 위기에 처한 미국 경제를 살리려는 노력은 2009년 9월 <미국 혁신을 위한 전략>(전략)에 담겨, 현재까지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 정책 지침서로 기능하고 있다. <전략>에 따라 미국 정부는 저렴하면서도 한번 충전하면 오래가는 자동차 배터리 연구에 110억달러를 투자하는 등 전기자동차 시대를 일찍부터 준비했다. 유럽 국가들에 뒤처지기 시작한 재생에너지 분야와, 의료 실수를 줄이고 보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헬스 아이티(IT) 분야에도 대규모 정부 투자가 진행된다.
하지만 정부가 특정 산업에 개입하는 것은 이렇게 세 영역으로 제한한다. 오히려 대형 은행과 대기업의 경쟁 회피와 왜곡을 엄격하게 감시하는 데서 정부 역할을 찾는다. 시장은 위기에 처할수록 안정을 추구하며 경쟁을 회피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스타트업 일반에 대한 정부 지원은 도덕적 해이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혁신의 출발점인 공정한 경쟁환경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시장 보안관으로서 역할을 엄격하게 수행할 때 비로소 가능하며, 경쟁 감시는 경제 위기에 더욱 값지다는 것이 <전략>의 철학이다.
오바마는 2014년 국정연설에서 “혁신에 모든 것을 거는 나라만이 세계 경제를 차지할 수 있다”며 전통 금융 산업과 자동차 산업의 시장 경쟁을 되살리고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혁신 디지털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조성한 것이 미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경제의 패권을 다시 찾은 비결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가진 시장철학이 의심스러운 요즘, 오바마 행정부의 시장혁신 전략은 값진 교훈이다.
강정수 ㈔오픈넷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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