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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ESC 코리아! / 김우재

등록 2016-06-20 16:35수정 2016-06-20 19:51

한국과 대만은 역사의 궤적도 비슷하지만, 청년들에게 ‘헬조선’과 ‘귀신 섬’으로 불린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사회는 불안정하고, 정치권에서는 개헌 논의가 한창이다. 개헌은 중요하지만 한 사회의 모든 문제를 정치적 기예로 풀려 해선 안 된다. 사회를 이루는 물적 토대의 바닥에 그 사회가 오래도록 투자해온 과학과 기술의 토양이 보험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 보험을 토대로 시민의 문화가 자라나고, 그 문화의 수준이 정치의 수준을 결정한다. 한국은 과학과 기술에 긴 시간 충분한 투자를 하지 못했다. 사회의 보험이 되어야 할 과학기술이 정체된 사이, 정치에 모든 것을 걸어버린 사회의 구조도 여전히 맴돌고 있다.

한국 사회 과학기술의 특징은 비주체성이다. 비교적 짧은 역사 속에서 고도성장과 함께 자라나 결국 정치에 종속되어버렸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한국 사회의 과학기술은 자신의 문화를 만들어낼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 결과 과학은 문화에 깊이 스며들지 못하고 겉돈다. 또한 과학자 사회는 연구실이라는 상아탑에서 사회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 과학을 둘러싼 문화 활동은 현장의 과학과 괴리되어 있으며, 황우석 사태는 이러한 모순들이 누적된 결과이자, 과학자와 사회를 다시 갈라놓는 원인이 되었다.

이런 적폐를 해결하는 방안은 과학 활동의 건강성을 담보하는 정상적인 정책과 제도를 확립하고, 현장의 과학과 과학문화 활동의 다각적이고 실질적인 상호작용을 확립하는 것이다. 과학이 바로 선 후에야 과학문화의 확산이 가능하다. 그 문화가 한국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 모든 활동의 중심에 ‘과학의 공공성’이라는 화두가 있다. 과학은 황우석과 같은 비윤리적 과학자 개인, 사회적 문제들과 담을 쌓고 과학적 자율성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과학자 집단, 이윤만을 추구하는 비열한 기업, 혹은 원자폭탄을 제조하는 폭력적인 국가 어디에도 귀속될 수 없다. 과학은 과학을 지탱하는 사회 모두의 공공재적 성격을 지닌다. 과학은 모두의 것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이해하는 과학기술자들, 또한 과학문화를 위해 노력해온 모든 사람들의 연대와 조직이 필요하다. 지난주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가 창립대회를 열었다. ESC란 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nge의 약자다. 컴퓨터 자판의 ESC는 복잡하게 얽힌 프로그램의 실타래를 푸는 키이기도 하다. ESC는 “더 나은 과학과 더 나은 세상을 함께 추구한다”는 선언 아래 세 가지를 주장한다. 첫째, 우리는 과학기술의 합리적 사유방식과 자유로운 문화가 한국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한다. 둘째, 우리는 과학기술이 권력집단이나 엘리트만의 소유가 아니라 시민의 공공재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대안적 과학기술 활동을 추진한다. 셋째, 우리는 과학기술을 통해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일에 동참한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SC의 첫 활동은 청년 과학기술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제도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새로운 형식의 과학기술 활동을 지원하는 일 등이 될 것이다. 여야와 진보·보수 모두 한국 사회의 이정표를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과학기술의 합리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를 궁극적으로 변화시켜보려는 ESC의 노력은 지켜볼 만하다. 역사적으로 사회의 궁극적 변화는 사회를 지탱하는 패러다임의 변화와 함께한다. 불교, 유교, 기독교로 변해온 그 축이 과학기술로 향할 수 있을까? 실험해볼 만한 일이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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