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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장소 투쟁 / 이라영

등록 2016-06-22 17:39수정 2016-06-22 19:21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일단 기본적인 조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시간과 공간이다. 언제, 어디에서. 이 조건이 없다면 수많은 시공간 속에서 서로 엇갈린다. 온라인도 일종의 장소다.

고위층이 의전에 집착하는 이유는 거창한 의전이 그 시간, 그 장소를 자신이 지배하고 있음을 공표하는 권력 행위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의 연대를 과시하는 룸살롱이라는 공간은 극단적인 젠더 권력이 ‘유료로’ 지배하는 장소이다. 시간과 장소는 인간의 삶에 있어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성별과 인종, 계층에 따라 살아가는 공간과 시간이 다르다. 청소노동자의 휴식 공간 부족, 기차역 플랫폼으로 직행할 수 있는 국무총리의 승용차, 부엌을 비남성적 공간으로 인식시켜온 ‘전통’, 공간에 대한 이 모든 태도에 권력이 개입한 차별이 있다.

그 공간이 누구의 공간이냐에 따라 침입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소수자들의 커뮤니티는 연대와 사교, 나아가 저항의 공간이다. 커뮤니티의 형성은 관계와 함께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유통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 관계와 언어라는 힘이 형성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소수자의 커뮤니티는 지속적으로 공격받는다. 성소수자들의 경우 자신의 많은 시간을 제 정체성을 숨기는 데 사용한다. 그렇게 관계 맺기를 방해받으며 고립을 강요당한다.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들은 시간의 빈곤과 공간의 박탈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 화장실 사용 문제는 바로 일상에서 박탈당하는 ‘사소한’ 공간에 대한 권리 투쟁이다. 페미니스트 지리학자인 린다 맥도웰은 “장소는 경계를 규정하는 규칙들을 구성하는 권력관계를 통해 만들어진다. (중략) 누가 어떤 공간에 속하는지, 누가 제외되어도 괜찮은지 등을 정해준다”(<젠더, 정체성, 장소> 25쪽)고 했다. 성소수자가 ‘벽장’ 속에 갇혀 있다거나 여성에게 ‘유리천장’이 있다는 은유도 모두 공간의 개념을 담고 있다.

미국에서 노숙 청소년의 40%가 성소수자에 해당한다.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장소’가 귀하다. 게이 퍼레이드, 게이바 등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게이바는 나를 배척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동지를 만날 수 있으며 이성애 사회에서 나의 사생활을 보호받을 수 있는 공공장소이다. 1969년 6월28일 새벽, 당시 성소수자들이 모이던 뉴욕의 스톤월인 바를 급습한 경찰에 항의하며 시작된 스톤월 항쟁은 그 시간 그 장소에 그 사람들과 있을 권리를 위한 투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퀴어 퍼레이드가 6월에 열린다.

미국에서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남은 올랜도 사건에는 혐오 범죄, 테러, 총기 규제라는 갖가지 요소가 뒤섞여 있다. 그러나 ‘게이 나이트클럽’이라는 사건의 장소는 우연이라기보다 사건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다. 1973년 뉴올리언스의 게이바에서 방화로 32명이 사망한 사건 이후 이번 올랜도 사건에 이르기까지, 성소수자의 몸과 그들이 모이는 장소는 꾸준히 침입당했다. 뉴올리언스 방화 사건의 경우 희생자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수치심 때문에 끝까지 시신을 수습하지 않은 가족들도 있었다. 마지막까지 버려진 몸이었다.

몸과 성은 차별의 기초를 형성한다.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막혀 있으며 혐오는 갈수록 오락이 되어간다. 혐오를 ‘표현’할 ‘자유’는 소극적 침묵의 도움을 받아 은근슬쩍 만개하고 있다. 차별받는 대상에 대한 의도적 무시가 지속되면서 정말 무지 덩어리가 되어버린 이들과 싸워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자기만의 방’을 위한 투쟁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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