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서울지하철과 삼성전자서비스. 5월28일 열아홉 하청노동자가 구의역에서 안전문을 고치다 열차에 치여 숨졌다. 6월23일 마흔셋 하청노동자는 3층 빌라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다 난간이 무너져 죽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일하던 공공기관 노동자와 시민의 편리를 위해 일한 민간기업 노동자. 지하철 하청기사의 월급은 144만원, 삼성전자 수리기사의 월급은 155만원+건당 수수료. 지하철 하청직원 가방에는 먹지 못한 컵라면이, 삼성 하청직원 가방에는 열지도 못한 도시락이 들어 있었다. 구의역 청년의 어머니는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배운 대로 시킨 대로 일했다”고 말했고, 삼성 수리기사의 사촌형은 “삼성전자서비스 기사 옷을 단정히 입고 가전제품을 그렇게도 자랑스럽게 잘 고치더니”라고 기억했다. 실적을 독촉하는 문자, 지킬 수 없는 안전수칙, 원청의 책임 회피까지 다른 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쌍둥이 죽음’. 유일한 차이는 하청인생 7개월과 25년이라는 세월의 간극뿐이었다. 그러나 죽음 이후는 확연히 달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청년의 꿈을 지켜주지 못했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고 늦게나마 사과했다. 안전업무를 직접고용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센터의 기사 실적 관리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게 전부였다. 구의역 사고는 서울시와 시민대책위 두 개의 진상조사단이 꾸려져 활동하고 있지만, 삼성 수리기사는 건당 수수료라는 올가미에 묶인 채 성수기에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오늘도 아파트 난간에 매달린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하청, 재하청이라는 외주화의 문제가 기저에 있는 것 아니냐”며 서울시를 질타했다. 구의역 승강장에 ‘이윤보다 안전이, 돈보다 생명이 우선’이라고 쓴 포스트잇을 붙이고 무릎 꿇고 희생자를 애도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국민들의 추모가 끊이지 않았던 것도 불평등 구조에 대한 ‘절망의 동병상련’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연설했다. 하지만 3주 뒤 삼성전자 수리기사의 죽음에 대해 두 대표는 말이 없었다. 을지병원에 차려진 고인의 빈소에 다녀간 정치인은 여야를 통틀어 더민주 우원식 의원이 유일했다. 삼성 앞에선 생명보다 돈이 우선이고, 삼성의 하청에게는 ‘절망의 동병상련’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중앙일보>마저 ‘에어컨 기사 죽음 부른 위험의 외주화’라는 사설로 “국회는 생명·안전 관련 업무를 외주화 대상에서 제외하는 입법 작업에 즉각 나서라”고 주장하는데, 여야 정치는 삼성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다. 삼성 엑스파일을 폭로한 노회찬의 의원직 강탈에서 삼성의 위력을 실감했기 때문일까? 7월1일 정부가 발표한 고용형태 공시 현황을 보면, 삼성전자서비스는 정규직 1302명, 기간제 6명, 소속 외 근로(간접고용 비정규직) 490명이 일한다고 신고했다. 그런데 소속 외 근로에 성북센터에서 목숨을 잃은 진씨를 포함해 전국 179개 센터 6000명의 수리기사가 빠져 있다. 이를 더하면 비정규직 비율이 27%에서 83%로 치솟는다. 삼성의 옷을 입고 삼성의 지시를 받아 삼성의 전자제품만 고치며 삼성을 위해 일하는 수리기사는 삼성에도, 정부에도 유령으로 취급당한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구의역 사고 청문회를 하겠단다. 20대 국회가 전국의 지하철과 철도의 안전업무, 전자제품 설치 수리기사의 하청화와 안전 실태를 파헤치는 특별조사단을 꾸리고 청문회를 열 수는 없을까? 삼성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정치. 딱 그만큼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도 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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