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푸시맨 / 손아람

등록 2016-07-27 19:32수정 2016-07-27 19:50

손아람
작가

90년대에는 지하철역에 푸시맨이라 불리는 역무원이 있었다. 승객을 열차 안으로 떠밀어 승강장을 비워내는 사람들이다. 마술사의 모자에 토끼를 집어넣듯이. 나는 지하철역에서 맨 앞에 서지 말라고 교육받은 세대다. 승강장에서 철로로 떨어진 승객이 차량에 치여 죽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폭발 사고도 아니었고, 탈선 사고도 아니었고, 살인 사건도 아니었고, 취객의 실족사도 아니었다. 그냥 인파에 밀려 떨어진 어이없는 사고였다. 죽음의 책임이 푸시맨에게 있었는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속보를 접할 때마다 나는 등을 떠밀던 푸시맨의 완력을 생생한 감각으로 떠올렸고, 사고 현장의 푸시맨들이 느낄 죄책감을 상상하곤 했다.

처음 스크린도어(안전문) 앞에 섰을 때는 뒤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인간의 목숨을 살리는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니! 이제 혼잡 역사마다 승객의 안전을 지켜줄 스크린도어가 세워졌고, 지하철공사는 푸시맨 대신 스크린도어 정비공을 고용한다. 그와 함께 위험은 소비에서 노동으로 전가됐다. 서비스를 동반하는 대부분의 산업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하철과 에어컨과 스마트폰과 피자는 위험하지 않은 물건이지만, 스크린도어 정비공이 열차에 치이고 에어컨 수리기사가 추락하고 반도체 노동자가 백혈병에 걸리고 피자 배달원이 교통사고를 당한다. 침대는 충분히 안전한가? 얼마 전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로 침대를 주문했다. 배송 기사는 침대를 직접 들고 오를 테니 사다리차 사용료만큼의 인건비를 달라고 부탁했다. 함께 들고 오르자는 제안을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재해보장이 안 되는 고객이 가구 이동 중 부상을 입으면 입장이 난처해진다는 것이었다. 회사는 사다리차 사용을 강제하는 대신 층수에 따라 운송료에 차등을 두었을 뿐이다. 사실상 위험수당을 영업하도록 방임한 것이다. 나는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처럼 거대한 침대를 등에 이고 홀로 계단을 오르는 배송 기사의 뒷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공항에서 일주일을>에서 공항 라운지의 풍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연기관의 개발, 전화의 발명, 제2차 세계대전, 로이터 화면에 실시간 경제정보 도입, 피그 만, 부리가 늘씬한 마도요의 멸종, 이 모든 것이 그 나름의 방식으로 일조하여 길을 닦은 덕분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구름 속에 들어앉은 듯한 모퉁이의 활주로를 내다보는 이 훌륭한 방에 소리 없이 섞이게 된 것이다.” 낭만적이면서 껄끄러운 이 묘사는 유감스럽게도 소비자의 권리 외관만을 극단적으로 치장하는 기업 전략의 효과를 정확하게 드러낸다. 이 방식은 지나치게 성공적이어서 고도 10킬로미터를 날아오르기 직전에도 안락함에 취한 승객들은 항공산업에 수반하는 여러 위험을 상상할 수 없다.

완벽하게 변두리로 밀려난 위험은 이제 소비자의 눈앞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시속 15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에어백 12개 달린 자동차의 운전자보다 손쉬운 희생양이 생겼기 때문이다. 위험은 스마트폰 내부로, 쇠붙이의 접합 사이로, 옥외 설치물의 높이 위로, 가구의 무게 아래로, 지하철이 달려드는 승강장의 스크린도어 너머로, 피자가 배달되는 속도 속으로 쑤셔넣어졌다. 오늘날의 푸시맨들은 위험을 노동하는 대신 위험의 위치를 경영한다. 그러나 위험의 제거는 기업의 탄생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부여된 사회적 약속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가격의 책정은 자유이지만, 소비자가 지불하는 금액은 스스로의 안전만큼이나 위험의 완전한 제거를 요구할 적극적 권리를 포함한다. 주방장의 손가락이 썰려 들어간 짜장면을 제공받지 않을 권리만큼 자명하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계엄이 제대로 깨운, 국힘의 ‘민정당’ 유전자 [성한용 칼럼] 1.

계엄이 제대로 깨운, 국힘의 ‘민정당’ 유전자 [성한용 칼럼]

[사설] 윤석열 체포 방해는 ‘제2의 내란’이다 2.

[사설] 윤석열 체포 방해는 ‘제2의 내란’이다

윤석열 아래 ‘악의 빙산’을 보라 [신진욱의 시선] 3.

윤석열 아래 ‘악의 빙산’을 보라 [신진욱의 시선]

우리가 모르는 한덕수 [12월26일 뉴스뷰리핑] 4.

우리가 모르는 한덕수 [12월26일 뉴스뷰리핑]

[사설] ‘8인 체제’ 이룬 헌재, ‘윤석열 탄핵’ 압도적 민심 새겨야 5.

[사설] ‘8인 체제’ 이룬 헌재, ‘윤석열 탄핵’ 압도적 민심 새겨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